어린이 유괴가 '장난'이라는 세상
[충청산책] 김법혜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생명은 고귀하다. 고귀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인간은 최소한의 권리라도 보장받고 안전하게 살고 싶어 한다. 더구나 아동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경우는 더 그렇다.
아동 인권은 아동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적 권리와 생애 주기적 특성에 따라 발달 시기에 적절하게 보호와 배려를 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얼마 전 이러한 보호와 보살핌이 필요한 아동을 대상으로 학교 앞에서 발생한 어린이 유괴행위가 "장난이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서울 서대문구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초등학생을 납치하려 한 피의자들이 경찰에서 진술한 말이다.
피의자 3명은 모두 20대 초반으로 중학생 때부터 친구 사이라고 한다. 당시 승용차 안의 운전석엔 대학생 A, 조수석엔 자영업자 B, 뒷좌석엔 대학생 C가 타고 있었다.이들 세 명은 지난달 28일 오후 3시 30분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초등학생들에게 접근, 세 차례나 똑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차량은 대학생 A의 아버지 소유로 홍은동에 거주하는 그는 이 승용차를 타고 대학교에 다니며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이들은 차량을 이용해 초등학생에게 접근, "귀엽다. 집에 데려다 주겠다" 며 말을 걸자 초등학생 2명은 겁에 질려 도망쳤고 일부 초등학생은 그들의 말을 무시한 채 지나쳤다. 피해 초등학교는 두 곳이고, 피해자는 모두 저학년 초등학생 네 명이 대상이 되었다.
경찰에 붙잡혀 온 이들은 "전날 술을 마신 뒤 다시 만나 짬뽕을 먹고 장난을 쳤다" 고 진술했다. 아이들이 놀라는 걸 재미 삼아 했다는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자기들에게도 가족이 있을 것이고 가족 중에 누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분개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인지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장난이었을 뿐 차에 태워 유괴할 생각은 없었다”는 게 피의자들의 주장이다. 경찰 진술에서, 이들 중 한 사람은 전과가 있고 뒷좌석엔 탄 C는 "잘못되면 중대 범죄가 될 수 있다" 고 앞에 앉은 친구들을 제지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를 고려해 C를 제외하고 다른 피의자들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다툼의 여지가 있다' 고 기각했다. 범행 당시 세 명 모두는 마약류 투약이나 음주 정황은 없었다. 아이들을 유괴할 생각도 전혀 없이 장난이었다는 말을 믿어야 되는가? 대한민국 형법(제287조)에는 미성년자를 악취 또는 유인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13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결과가 발생하지는 않았으나, 시도에만 그친 미수범이라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 등으로 처벌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의자 세 명은 어이없게도 "장난이었다"는 진술을 통해 미수범조차 아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미수' 또한 결코 죄질이 가벼운 게 아니다. 목적 없는 장난이었다 하더라도 어린 초등학생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는 장난은 강하게 처벌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장난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아동은 성인이 되더라도 평생 동안 불안과 공포라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야 할 수도 있다. 남의 인생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서 장난이라니 정말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경찰의 초기 대응 미흡 논란까지 있는 서울 홍은동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이 "장난이었다" 는 그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며 솜방망이 처벌이 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이 땅에 자녀를 가진 사람들, 아니 온 국민들이 분노하며 그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장난’이라는 말이 모든 것을 덮고 합리화 시켜 버린다면, 그것이 변명이 될 수 있고 용서가 되는 것이라면 세상에 어떤 일들이 범죄가 된단 말인가? 그것도 아무런 방어 능력이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벌인 일을 사소한 장난 정도로 무마시키는 판결을 한다면 이 땅에 정의는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 강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은 이들의 진술이 정확한지 폐쇄회로(CC)TV 영상과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확인 중이다. 다른 부모들도 "불안해서 앞으로 어떡하느냐" 등의 말로 걱정을 내비치고 있다. 한 어머니는 자녀 손을 잡고 "등하굣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힘주어 강조하기도 한다.
세상이 따뜻하고 살 만한 곳이라는 것을 배우기도 전에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곳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이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학부모들은 “잘 대비하지 않으면 유괴 사건이 언제 어느 곳에서 또 터질지 몰라 무섭다" 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이 유괴는 사건이 터지면 대개 몸값을 요구하거나 성적 착취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양육을 목적으로 유괴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또 이 경우처럼 별다른 이유 없이 장난처럼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요즘은 사방에 CCTV가 있고 아이들 모두 휴대전화가 있어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어린이 유괴 범죄는 민감성과 사회적 파장을 감안 하면 안일한 대응은 금물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어린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장난감처럼 여기며, 목숨을 가벼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