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품는 대학교육으로의 전환
[충청의창] 심완보 충청대 교수
대학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사회제도 중 하나이며, 현재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고등교육 기관이다.
세계 최초의 대학이 어디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학과, 박사 학위를 비롯한 지금까지 내려오는 대학의 개념을 정립하고 대학을 뜻하는 영어 'Univeristy'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Universitas'가 처음 포함된 것은 1088년 신성 로마 제국 시대에 세워진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교이다.
대학은 시대에 따라 역할을 변화시켜 왔다. 중세 대학은 교회가 독점하던 지식을 대학으로 가져옴으로써 이후 서양 학문의 발전을 이끌었다. 19세기 이후에는 각국 정부는 대학을 국가 발전의 도구로 여겼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무기 생산을 비롯한 전쟁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대학을 이용했다. 하지만 냉전의 시대가 끝나고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대학은 다양한 평가와 인증에서 좋은 순위를 획득하고,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기금을 얻기 위해 다른 대학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지식은 오랫동안 대학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존재 이유였다. 대학은 정보를 독점하고, 이를 체계화하며, 그것을 습득하는 사람에게 학위와 자격을 부여해 왔다. 그러나 이 구조는 이제 균열을 맞고 있다. 인공지능,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은 지식을 더 이상 희소한 것이 아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장이 가져다주던 확실한 취업 보장은 약화되고 있고, 기업들은 단순히 학위를 기준으로 인재를 평가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제는 실제 문제 해결 능력, AI와 협업할 수 있는 역량, 비정형적 판단력 등이 더욱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기존에 대학 졸업생들이 진입하던 화이트칼라 초급 직무 상당수가 AI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 진입 시점의 출발선 자체가 AI와의 경쟁 구도로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대학은 학위를 수여함으로써 학위 취득자가 이만큼의 지식을 갖추었다는 인증 기관의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 더 이상 그 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다.
학위라는 문서가 지식을 담보하던 시대는 끝났고, 지식은 더 이상 희귀하지 않다. 하지만 지혜는 여전히 얻기 어렵다. 그리고 지혜는 혼자서 자동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경험과 질문 사이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앞으로 대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다.
대학이 지혜의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가르침의 방식, 평가의 구조, 교육의 목표, 모두 다시 재설계되어야 한다. 다변화 시대에 고등교육에서의 AI는 문제 해결의 필수 도구이기 때문에 대학에서는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앞으로 대학 교육은 학생들이 AI와 대립하는 게 아니라 AI를 품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