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힘, 불치하문(不恥下問)
[교육의 눈] 김재국 문학평론가·에코 색소폰 대표
필자는 중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30여 년을 보냈다. 학생들과 시를 읽고 소설을 토론하며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는 즐거움을 나누었다. 교단을 떠난 뒤에는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지금은 성인들에게 색소폰을 가르치며 다시금 ‘배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는다. 돌이켜 보면 나의 삶은 늘 배움과 함께였다. 실용음악 학사, 교육학 석사, 문학박사까지 이어진 학위는 그 여정을 증명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불치하문(不恥下問)”을 말하며, 지위나 나이에 상관없이 아랫사람에게 묻는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이 말은 단순히 “아랫사람에게 물어도 된다”라는 수준을 넘어, 배우기 위해 체면을 내려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참된 배움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색소폰을 배우던 시절,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꼈다. 한 음을 제대로 내기 위해 수없이 질문했고, 그때마다 속으로 쌓아둔 체면을 내려놓아야 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동기에게 “이 운지 어떻게 해요?” 하고 묻는 순간이 처음에는 몹시 쑥스러웠지만, 그 과정을 통해 배움의 본질을 새삼 깨달았다.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야말로 성장의 열쇠였다.
성인 학습자들에게 이 태도는 특히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모른다고 말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제 와서 배워서 뭐 하나” “나만 뒤처진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그 벽을 깨는 순간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다. 색소폰 수업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묻는 학습자가 훨씬 빨리 성장한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배움은 결국 겸손의 다른 이름임을 다시 느낀다.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영역(ZPD) 개념은 이 과정을 잘 설명해 준다. ZPD란 혼자 힘으로는 아직 할 수 없지만, 더 숙련된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너무 쉬운 과제는 배움을 일으키지 못하고, 너무 어려운 과제는 좌절만 남긴다. 적절한 도움과 도전이 주어질 때 학습자는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며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묻고 배우려는 태도다. 질문이 있어야 교사의 조언이 작동하고, 스캐폴딩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색소폰 교실에서 이를 매일 목격한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연습하며 작은 성취에도 기뻐하는 제자들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성장한다. 반대로 묻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진도가 더디다. 배움은 독립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교사와 학습자가 서로 상호작용하고 질문과 피드백이 오갈 때 비로소 새로운 배움이 일어난다.
불치하문은 단순한 옛말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배움의 원칙이다. 성인 학습자에게는 특히 더 필요하다. 체면을 내려놓고 묻는 용기, 그 순간 배움은 시작되고 삶은 다시 젊어진다. 나 역시 매일 이 원칙을 떠올리며 학습자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