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저고리
[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벌써 선선하다. 곱게 풀 먹여 다려 놓았던 모시옷을 다시 물에 담갔다. 풀기가 있으면 보관 중에 곰팡이라도 필까 봐, 입지 않았던 옷들도 모두 다시 물에 헹궈서 풀기를 빼내고 올을 바로 잡아, 가지런히 개켜서 꼭꼭 밟으니, 숨죽은 모시는 종이처럼 얇게 펴졌다. 마치 책꽂이에 끼워서 눌러놓았던 단풍잎처럼 곱다. 모시의 원료인 모시풀은 장미 목 쐐기풀과에 속하니 모시옷이 나무 그늘에 있는 것처럼 시원한 것은 원료가 풀이어서 그런 것이다. 올여름 모시옷은 국제적인 행사의 주인공 역할도 톡톡히 했다.
친정어머니는 늘 반짇고리를 곁에 두고 바느질하셨다. 아버지가 재봉틀 장사를 하셔서 집에 재봉틀이 있어도, 할아버지 두루마기는 늘 손바느질을 하셨다. 소매, 앞섶과 뒤판 등을 모두 분리하여 빨랫줄에 널어놓으면 나풀거리는 각각의 옷감들이 하나라도 날아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한 땀 한 땀 고르게 바느질하고, 인두 판에 섶을 놓고, 풀을 붙여 인두질하면 한 치도 어긋남 없이 매끄러운 두루마기가 완성되었다. 할아버지가 진솔 두루마기를 입고 나가실 때면 흰 수염이 잘 어울리는 그림 속의 학자처럼 보여 내 마음이 으쓱했다.
구깃구깃해진 옷을 다시 숯다리미로 눌러 고르게 펴서 벽에 걸어 놓으면 비단옷과 다를 바 없이 곱다. 어머니의 솜씨가 마법을 일으킨 것 같아 감탄하고는 했다. 고급지다는 안목을 처음 느끼게 한 것이 할아버지의 모시 진솔 두루마기다.
예순 살 첫 여름에 모시옷을 지어 입었다. 마치 모시옷을 입기 위해 나이 먹었던 것처럼, 환갑이 되자 중앙시장 한복집에 가서 옥색 치마 흰 저고리를 맞춰 입고, 그 집을 단골로 삼았다. 한복을 입을 때마다 할아버지 생각이 났고, 동화 속 나라처럼 가장 평안하고 풍족했던 옛 시절을 떠올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사업이 파산해버린 후, 어머니는 더는 안방에서 바느질하지 않았다. 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아버지와 함께 종일 집을 비우면 어린 나는 우물에서 아홉 식구 나일론 옷을, 거친 빨래판에 치대어 빨았다. 바느질하던 어머니 곁에서 바늘귀에 실을 꿰어드리던 그때가 지금도 그리운 것은 어머니의 고운 얼굴과, 예쁘게 수놓은 반짇고리와 귀족처럼 보였던 할아버지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모시옷을 손질해서 예쁘게 입는 사치를 즐긴다. 손질하는 게 쉽지 않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모시옷이 주는 격조를 생각하면, 풀을 먹이고 지근지근 밟고 꾹꾹 눌러 다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예식장에 모시 한복을 입고가면 혼주인 줄 알고 주차장을 안내하기도 하고, 각종 행사에 참석해도 안내자들이 귀빈인 줄 착각하고 앞자리로 안내하기도 한다. 물론 한복을 입으면 걸음걸이며 자세를 바르게 하니, 보다 격이 높아 보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름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계절 한복을 입고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되었고, 한복을 입으면 나이 들어 보인다고 다들 꺼리는데, 조선 시대에는 아이들도 한복을 입고 자라지 않았는가.
이제는 외국 나들이를 할 때면 꼭 계절에 맞는 한복을 챙긴다. 일본도 가고, 뉴욕도 가고, 말레이시아도 간다. 텃밭에 무궁화를 키우고, 마을 어귀에 한옥을 짓고, 스마트폰 컬러링도 애국가로 하면서 늙어가기로 했다. 매일매일 치마저고리를 입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