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에 길을 묻다… '준비된 작별교육'
[세상을 보며] 안용주 전 선문대 교수
UN기준 65세 이상 노인인구 20%가 되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한국은 2024년 12월 기준으로 20%를 돌파하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법정 정년인 60세 이상은 약 27%에 이르고 있어 거리에서 만나는 3.7명 중 1명은 생산연령에서 멀어진 존재다. 이대로 가면 10년 후인 2036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3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62.3세(1970년)에서 83.5세(2023)로 지난 50년 간 21.2년이 증가했으니, 10년에 4.2세의 수명연장이 일어난 셈이다. 현재 유아를 포함한 20대 인구가 28.14%이니 60세 이상 인구와 거의 동수(同數)를 이루는 셈이다.
공무원에게는 ‘공직생애주기별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이 가동한다. 입사초기(공직윤리)부터 퇴직예정자에 대한 교육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에 맞춰 필요한 내용을 교육하는 설계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60세 이상 인구가 30%에 육박하면서, 그동안 공업입국(工業立國)과 산업입국(産業立國)을 기치로 내달려온 한국은 어느새 OECD경제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앞만 보면서 달려온 한국사회는 국민에게 자신과 가족을 돌아볼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고, 노동의 일선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늘어난 기대수명은 오히려 짐(負荷)이 되었다.
보수정부를 제외한 진보정부에서는 인구구조의 변화를 대비한 촘촘한 복지정책을 설계했지만, 보수정부가 들어서면 국민을 그저 ‘일하는 기계’로 간주하며 채찍을 들기에 여념이 없었던 역대정부와 마찬가지로 노동시간을 늘리는데에만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박정희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는 국민헌장을 만들어, 말을 시작하는 어린애부터 모든국민에게 강제로 암기하도록 시켰고,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는 세뇌를 각인 시켰다. 1968년의 일이다. 이들이 지금 초고령사회를 이루는 핵심 그룹이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 약 30%에 이르는 고령인구에 대한 ‘고령자생애주기별교육’을 설계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은 인생 준비기와 과업 몰두기에 대한 정책과 교육 시스템은 매우 탄탄하게 구조화되어 있지만,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에 대한 정책과 교육이 ‘단순 복지’로 매몰되어 있다. ‘출생-정착-이별’의 단계별 맞춤형 사회정책이 확립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퇴직과 동시에 찾아오는 것은, 역할상실에 따른 고독과 소외감이다. 이어서 경제적 곤란과 신체의 부적응, 기술변화에 따른 사회부적응, 갑자기 주어진 여유로움은 오히려 허탈감과 공허함으로 다가와 심각한 자살충동과 우울문제로 고민하는 노년을 유발시킨다. 현재 대한민국은 이들을 연착륙시킬 정책을 ‘복지’라는 카테고리에서 한정적으로만 제공하고 있다. 모두가 알아서 생존해야하는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료 중에 ‘노인의 성(性)’에 대해 연구한 교수가 있었다. 그와의 담화가 없었다면 노인(老人)에게 성욕(性慾)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오아시스(2002)라는 영화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전과자 청년(설경구)과 뇌성마비 장애인 여성(문소리)의 시선에서 바라 본 ‘장애인의 성(性)’을 그린 작품이다. 노인(老人)도 장애인도 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성욕(性慾)에 대해 우리는 지나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유아교육부터 취업교육까지 촘촘하게 설계된 산업시대의 교육체계에서, 이제는 퇴직 후를 걱정하는 3할의 국민을 위한 ‘60대 이후의 생애주기별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설계보다 더 촘촘하게 ‘준비된 작별’을 위한 교육까지 담아내야 압도적 노인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를 벗을 수 있다. 한국은 연간 3천 명 이상의 노인이 자살하는 ‘노인을 버린’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이는 초고령사회에 대한 준비부족이 불러온 불행이다.
퇴직과 노후를 위한 ‘남녀별 생애주기별교육’프로그램이 촘촘하고 폭넓게 설계되어야, 역할극에서 버림받아 고통받는 고령자에게 ‘준비된 작별’정책이 제공되어야, 비로소 행복한 일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권은 ‘준비된 작별’을 제대로 뒷받침하는 국민을 위한 정부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