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대회장 박대순 조각가
“예술은 역사와 삶의 기록… 민전은 그 집약체”
“예술은 개인의 표현이면서도 시대와 사회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언어입니다. 민전(民展)은 그 언어가 모이고, 대화가 시작되는 장입니다.”
2년 연속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의 대회장을 맡은 조각가 박대순 작가는 ‘예술의 공공성’과 ‘현장의 무게감’을 강조했다. 제36회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은 지난 17일 서울 신문로 경희궁미술관에서 막을 올렸고, 동·서양화, 공예, 서예, 민화 등 4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예년보다 풍성한 구성과 탄탄한 작가군으로 미술계 안팎의 호평을 받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박 작가가 있다.
충북 청주 오송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는 박 작가는 오랜 시간 지역을 기반으로 한국 조각계의 궤적을 묵묵히 걸어왔다.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와 한남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3년 충청북도 미술대전 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KBS 환경미술대전, 현대미술협회 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등 국내 주요 미술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작가로서 작업실에 머무는 시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현장과의 교감입니다. 이 대회를 통해 지역의 예술가들이 전국적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대중에게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중국과 일본, 수원, 청주 등에서 수차례의 개인 조각전을 열고, 아트페어와 단체전을 300여 회 이상 참여했다. 특히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산동대학교 예술대학 초빙 교수로 재직하며 조형예술의 국제 교류와 교육 현장을 오갔고, 필리핀·인천시 경제교류 상징탑, 한·중 미술교류 조직위원회 운영위원장 등 글로벌 문화 현장에서 활약했다.
박 작가는 또한 50여 점에 달하는 공공조형물과 기념비를 제작하며 예술의 공공성 실현에 앞장서왔다. 세종시 연기대첩비, 전의 세종대왕 ‘왕의 물’, 미8군 참전기념비를 비롯해 독립운동가 신채호·손병희·신홍식·신석구 선생 동상, 충북 보은 속리산 조각공원 등 그가 새긴 조형물은 도시의 풍경이자 기억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수많은 공모전과 전시가 있지만,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은 역사와 전통, 권위와 명성을 함께 갖춘 몇 안 되는 민전입니다. 지난 46년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다는 그 자체가 예술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현장에 있는 작가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1980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첫 대회장을 맡으며 시작된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시대적 전환기와 함께 예술과 정치, 사회가 교차하던 시점에서 출발했다. 박 작가는 이 대회의 역사성과 공공적 가치에 누구보다 깊은 공감과 책임감을 갖고 임하고 있다.
“민전은 단순히 작품을 걸어두는 공간이 아닙니다. 각 작가가 품고 있는 고민과 현실, 시대적 메시지를 집약해 보여주는 살아있는 기록입니다. 저는 이 무게를 외면하지 않고, 더 많은 작가가 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박 작가는 특히 청년 작가 발굴과 지역 예술 생태계 연계에 집중했다. “충북을 비롯한 지역 작가들에게는 서울이라는 공간이 여전히 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번 대회가 단순한 일회성 전시가 아니라 차세대 작가들의 성장 플랫폼이자 교류의 장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오랜 교육 활동도 병행해왔다. 충남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서울시립대, 건양대학교 등에서 조형예술과 인체해부학, 아동미술 등을 강의했고, 미술대전 심사위원과 문화조형 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예술행정과 교육 현장을 넘나들었다.
“한 명의 작가가 예술의 길을 꾸준히 걷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조각가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제는 그 길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박 작가는 후배들에게 “자기만의 시선을 놓지 말라”고 늘 당부하는 선배다. 유행을 좇기보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에 충실할 때 진정한 작품이 나온다는 그의 철학은, 그가 지금껏 쌓아온 수많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예술은 고립된 영역이 아니라 시대와 호흡하는 행위입니다.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은 여전히 성장 중이며, 그 중심에 작가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이 대회를 통해 예술의 힘이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길 바랍니다.” /김재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