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쉬운 일은 없더이다

2025-10-30     충청일보

[김진웅 칼럼] 김진웅 수필가 

며칠 전 마을 앞 노점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를 눈여겨본 적이 있다. 손님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닐 테니 자칫 무료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살펴보니 군걱정이었다. 그 할머니는 손님이 없을 때는 고구마 줄기를 벗기고 계셨다. 한참 살펴보니 그 일은 단순한 일이라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돕고 싶어서일까. 고구마 줄기 한 단을 사니 연신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셔서 오히려 겸연쩍기까지 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보여주니 다른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해서 직접 하기로 했다. 노점상 할머니가 하던 대로 해도 잘 안 되었다. 어느 것은 잘 벗겨지지만 어떤 것은 껍질이 끊어지곤 했다. 작은 과도를 사용하니 조금 능률적이었다. 한참 작업을 하니 금세 팔이 아프고 온몸이 뒤틀리고 어깨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무거운 것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닌데 이렇게 괴롭고 아프다니…….’

처음 생각한 것보다 너무 힘이 들고 강한 인내심을 요구했다. ‘모든 일은 수행(修行)이다.’ 여기고 하니 능률도 오르고 참을성도 길러지는 듯해 다행이었다. 끝까지 마친 내가 대견스럽고 보람도 있었다. 이튿날 고구마 줄기 볶은 반찬을 먹으니 아삭아삭하고 맛있었다. 나머지는 말리자고 해서 발을 펴고 널었다. 가을볕이 좋아 저녁때가 되니 다 마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구마 줄기는 온데간데없고 가는 철사 토막같이 가느다란 나물이 한줌 있는 게 아닌가. 이 마른 나물을 겨울에 물에 불렸다가 국을 끓이든지 반찬을 만들면 맛있다.

조그마한 텃밭에 채소를 길러보아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예쁘게 자라나는 배추, 근대 등의 잎이 어레미처럼 송송 뚫려 있어 살펴보니 배추벌레가 있다. 한 마리씩 잡는 수밖에 없다. 배춧잎 색과 비슷해 찾기도 어려웠다. 보호색이라는 것을 체험으로 알았다. 일정한 임무 수행을 위하여 정체를 숨기고 남을 속이려고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보호색을 쓰다’라고 한단다.

매일 벌레를 잡아도 여전히 구멍투성이다. 작은 달팽이들이 숨어 있었다. 채소를 텃밭에 조금 키우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넓은 밭에 재배해서 판매하는 분들은 얼마나 어려울까. 무농약으로 채소를 재배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과연 가능할까 싶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면 화학 비료, 유기 합성 농약, 생장 조정제 등 일체의 합성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물과 미생물 등 자연적인 자재만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며칠 후 다시 가니 ‘불법 노점상 금지구역’이라 공고문을 게시하고 단속하고 있었다. 구청(區廳)에서 관리 차원이겠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란 책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며 세상만사 겪어보면 순조롭게 진행되는 일도 더러 있지만 대체로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체득한다. 아침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에 부칠 때도 많다. 그렇다고 지레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지혜와 인내심을 발휘하며 해낼 때 보람과 행복도 커질 것이다. 세상사 쉬운 일은 없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