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씨가 넓은 들판을 태운다
[충청산책] 김법혜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고전여담에 ‘성화요원’이란 사자성어가 나온다. 별 성(星), 불 화(火), 화톳불 요(요,燎), 언덕 원(原)자를 뜻하는 말로, ‘작은 불씨가 넓은 들판을 태운다’ 는 의미이다. 여기서 ‘성’(星)자는 희뜩 희뜩하다는 뜻으로 다른 빛깔 속에 흰색이 섞여 있는 모양새로 서로 상반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긍정적으로는 ‘작은 노력도 쌓이면 언젠가는 큰 성과를 낸다’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부정적으로는 ’작은 일이라도 처음에 그르치면 나중에 큰 낭패를 보게 된다‘ 는 뜻도 담겨 있다.
‘천장높이의 둑도 개미의 구멍으로 무너진다’는 ‘천장지제(天仗之堤) 제궤의혈(堤潰蟻穴)’도 같은 뜻이다.
한비자 유로 편에 나온 글이다. ‘천길 제방 둑은 땅강아지와 개미구멍에 의해 무너지고, 백 척의 높은 집이라도 자그마한 굴뚝 사이 불씨에 의해 타버린다’는 구절로 아주 작은 불씨라도 소홀히 다루면 크게 번져 넓은 들판을 순식간에 태워버리듯, 사소한 일이라도 처음에 잘못 다루거나 방치하면 나중에 큰 재앙이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국공내전의 와중인 1930년 마오쩌둥은 ‘성성지화 가이요원’을 제목으로 격문을 썼는데 이런 의미와는 정반대의 글을 남겼다. 작은 불씨도 언젠가는 커지기 마련이라며, 희망을 잃지 말고 투쟁하라는 뜻이다. 어떤 의미이든지 간에 작은 불씨를 조심하는 것은 매사에 신중한 태도로, 특히 정치가와 리더들에 필요한 덕목이다.
사소하다며 무시하고 지나친 일이 눈덩이처럼 커져 자신을 해치고 국가를 망가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재판소원에 따른 이른바 ‘4심제’ 논란을 두고 국내 최고 법관들이 둘로 나뉘어 있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재판소원을 혹시 맡게 될 헌법재판관들은 일제히 환호하는 반면 자칫 4심제로 인해 자신들의 결정을 헌재로부터 판단 받게 될 대법관들은 부정적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헌재는 지난 5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재판소원 도입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작년 말까지 대법관을 지낸 헌법재판소장도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법원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기본권 보호 측면에서 보다 이상적”이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번 국감에 나온 각급 법원장들은 일제히 재판소원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법조계의 양분된 모습을 보면 최고 엘리트 집단인 ‘판사 사회’도 집단이익 수호 측면에서는 범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3심제를 유지하건, 4심제로 바뀌건 간에 두 집단의 판사들 모두 법 이론엔 도통한 만큼 표면적으로는 위헌이 되지 않게끔 논리를 잘 전개해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 시켜 나가고 있다.
4심제를 한다고 위헌은 아니라는 얘기다. 헌법재판소법 68조1항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법원의 재판 제외’ 규정만 없애면 된다. 이럴 경우 법적 불안정성이 커지고, 4심제로 인한 소송 증가는 법률 시장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얼마 전 민주당이 대법관을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고, 법관 평가제 등을 도입하는 사법개혁안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판소원 취지도 대법원 위에 헌재를 두려는 것이니 결국 비슷한 지점에서 만난다. 특히 이 같은 조치들이 특정인, 특정세력을 위한 것이 아닌지에 대해 많은 국민은 의심하고 있다.
대법원과 헌재는 각자의 집단 이익이 아니라 대국민 사법서비스 개선에 초점을 맞춰 대응하기 바란다. 정치권이 뭐라 해도 사법 질서를 바로 세우고 삼권분립의 철저한 균형을 유지해나가야 국가가 바로 서고, 궁극적으로 국민과 국익에,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는 작은 노력도 쌓이면 언젠가는 큰 성과를 낸다는 얘기지만 부정적으로는 작은 일이라도 처음에 그르치면 나중에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명언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시점이다.
격변기를 맞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국가기관과 정치인들은 ‘성화요원’을 거울 삼아 신중하게 현안들을 결정해 주기 바란다. 올바르지 못한 결정은 사법리스크를 긁어 부스럼으로 만들 수도 있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한 충분한 공론화를 통해 오해와 부작용을 최소화 할 때 비로소 사법개혁이 단단히 뿌리 내리고 법치국가에 걸맞은 미래의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을 무시하는 국가권력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며, 결국은 국민에 의해 심판 받아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