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에서, 사람을 그리워하다
[교육의 눈] 노기섭 홍익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학과 교수
가을의 공기는 언제나 묘하다. 여름의 뜨거움을 식히며, 아직 완전히 차가워지지 않은 온도로 우리 곁을 스쳐 간다. 캠퍼스의 나무들은 하나둘 색을 바꾸고, 벤치에 쌓인 낙엽은 또 다른 계절이 왔음을 알려준다. 11월의 대학은 이별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익숙한 교정의 풍경도, 함께 웃고 토론하던 친구들도, 이제 곧 각자의 길로 떠날 준비를 한다. 졸업은 늘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이정표다.
그 두려움의 한가운데에는 요즘 AI가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어려웠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코드를 대신 짜고, 논문을 요약하며, 음악과 그림을 만들어 내는 AI의 등장 앞에서 학생들은 묘한 불안을 느낀다. “내 전공이, 내 직업이, 나라는 존재가 필요 없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이 마음 한편에 스며든다. 사회에 나가기 전, 처음으로 마주하는 거대한 벽이 이제는 경쟁자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별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의 다른 이름이었다. 기술이 사람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AI는 데이터를 계산하고 답을 찾아내지만, 그 안에 감정과 망설임, 그리고 인간의 따뜻함은 담지 못한다. 대학 생활 속에서 배우는 진짜 힘은 지식을 넘어서는 경험, 사람과의 관계, 실패에서 얻는 성찰에 있다. 그것은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복제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배움이다.
교수들에게도 이 시기는 복잡한 계절이다. 학생들과의 이별은 언제나 아쉽지만,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 또 다른 기대가 생긴다. 강의실에서 함께 고민하던 시간, 웃음과 토론으로 채워진 하루들이 이제 추억으로 남는다. 그 안에는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관계와 기억이 있다. 아무리 정교한 인공지능이라도, 학생의 눈빛 속에 담긴 두려움이나 설렘을 읽어내진 못한다.
가을의 바람이 차가워질수록 마음 한쪽이 허전해진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떠나보내야 할 사람과의 작별, 익숙했던 공간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그리고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있다. 사랑하지만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람, 시간의 벽 너머로 멀어진 그리운 얼굴이 있다. AI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을 수 있지만, 그리움의 온도는 계산하지 못한다. 아무리 똑똑한 기계라도 ‘그 사람의 부재’가 만드는 두려움을 채우지는 못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려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성장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름의 열정이 식고, 가을 낙엽이 떨어지듯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자리에 새로운 시작이 싹튼다. 이별이 슬픈 이유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화가 두려운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누군가와 무언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기 때문이다. 11월의 하늘 아래, 낙엽을 밟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