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항타기 전도, '경고음 무시된 현장'이 만든 충격… 철도공단, 전면 손질 나선다
장비 결함+관리 공백, 중첩된 위험 구조 드러나 안전기준·점검체계, 현장 중심, 재설계 필요 유압 장치 문제 명확… 제도 개선 서둘러야
항타기 한 대가 흔들리고 쓰러졌던 그날 밤, 건설 현장은 이미 경고 신호를 여러 차례 흘리고 있었다. 부품 결함은 눈에 띄지 않았고, 작업자는 점검표에 적혀야 할 항목을 놓쳤으며, 현장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거대한 장비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국가철도공단 조사단이 내놓은 결론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고는 장비만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 체계 전체의 균열에서 비롯됐다."
조사 결과 가장 먼저 드러난 건 장비 기준의 뒤처진 현실이었다. 기계 내부 유압장치가 흔들릴 때 이를 잡아줄 보조 장치가 사실상 없었고, 장비가 기울기 시작해도 즉시 알릴 경고 체계도 충분치 않았다. 현장의 작업자들이 눈과 감각에 의존해 변화를 감지해야 하는 구조였던 셈이다. 조사단은 "장비가 한계각에 접근하고 있다는 신호조차 현장에서 체계적으로 포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작업 기준도 허술했다. 장비가 현장에 오래 세워져 있었지만 지면 고정 조치는 미흡했고, 장비가 놓인 지반의 기울기를 확인하는 절차는 사실상 관행 수준에 머물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바람이 강해지는 시점에도 장비 운용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위험성이 누적되는 구조였다. 종이 서류에만 존재하던 '작업계획서'는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이 되지 못했다.
관리·감독 체계 또한 문제였다. 안전관리계획서에는 장비 운영에 대한 구체적 항목이 빠져 있었고, 보고가 형식화되며 관리자가 위험 징후를 초기에 잡아내기 어려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박 중인 장비가 넘어질 가능성을 사전에 평가하는 절차 역시 없었다. 조사단은 "현장을 통제하는 구조가 장비 특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근본적 한계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고는 단일한 원인으로 규정되기 어렵다. 낡은 기계 기준, 느슨해진 작업 절차, 뒤늦게 반응하는 감독 체계 등 세 가지가 동시에 취약했던 지점에서 사고는 발생했다.
공단은 이를 전면 수정하기로 했다. 장비의 경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리는 장치부터 운용 중 배관을 보호하는 구조까지, 기계 자체의 기준을 새로 만들고, 바람·지면·작업 대기 상황 등 장비가 현장에서 마주치는 모든 조건을 세밀히 반영한 작업 지침을 도입하기로 했다.
또 장비 운영계획을 아예 안전관리계획서 안에 포함시켜 현장에서 보고와 확인이 실효성 있게 이뤄지도록 감독 체계를 고도화할 예정이다.
이성해 이사장은 "이번 사고를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중장비 작업 전 과정에서 안전 사각지대를 없애는 체계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대전=이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