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직업으로 되살아난 충북 여성의 삶… '2025 충북여성생애구술사 이야기마당'
양잠농부·전화교환원·조산사 등 9개 직종 여성의 생애 기록
충북 여성들의 잊힌 노동과 삶의 목소리를 기록한 '2025 충북여성생애구술사 이야기마당'이 18일 충북미래여성플라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충북여성재단(대표이사 유정미)은 이날 오후 2시 A동 로비에서 발간보고회와 구술자 토크가 결합한 이번 행사를 개최하며, 지역 여성 노동 역사의 복원과 기록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번 구술사 사업은 1970~80년대를 중심으로 이제는 거의 사라진 9개 직종, 즉 양잠농부, 화장품 방문판매원, 전화교환원(전화국·우체국), 타자수, 의상실·한복집 주인, 방앗간 주인, 조산사 등에서 일했던 충북 여성들의 삶을 구술인터뷰로 담아냈다. 조사 범위도 기존 청주 중심에서 보은·진천·증평·충주·제천·음성 등 충북 8개 시군으로 확대해 지역적 다양성을 확보했다.
이야기마당의 1부에서는 사업 경과보고와 함께 구술자들의 인터뷰를 기록한 아카이빙 영상이 상영됐다. 2부에서는 구술자 9명이 직접 무대에 올라 생생한 노동의 기억과 삶의 온기를 전했다.
보은의 양잠농부 이은근씨(94)는 "누에가 너무 이뻐서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말하며 평생의 정성을 떠올렸고, 진천의 화장품 방문판매원 정숙희씨(86)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하루 종일 걸었던 시간이 지금도 자부심"이라고 회고했다.
충주에서 전화교환원으로 일했던 이춘대씨(85)는 "내 말 한마디에도 정성을 다하던 시절이었다"고 말했고, 우체국 전화교환원이었던 박정순씨(79)는 "늘 남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비밀을 잘 지킨다"고 웃음을 자아냈다.
증평에서 조산소를 운영했던 홍성명씨(71)는 "아이들과 산모에게 정성을 다하다 보니 내 마음도 더 좋아지더라"며 직업적 자부심을 드러냈다.
보고서에는 여성들이 가족 생계의 중심이자 지역 노동의 주체로서 겪어야 했던 성차별, 직업적 편견, 고단함과 자부심이 복합적으로 담겼다. 노동사이자 기술·산업사이며, 성별화된 사회에서 여성이 저항하고 주체로 서 온 과정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여성사라는 평가다.
이번 프로젝트는 구술 작가, 사진·삽화 작가, 여성사 및 역사학자 등이 함께 참여해 기획부터 채록, 집필, 감수까지 약 1년간 협업한 결과물이다. 타자기, 전화기, 누에상자, 방앗간 기계 등 더 이상 일터에서 보기 어려운 도구들은 삽화로 재현돼 여성들의 노동을 '본문'으로 복원하는 데 힘을 보탰다.
유정미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는 "아홉 분의 여성은 산업화·도시화 시대를 살아낸 생생한 역사 그 자체"라며 "이 기록은 직업의 흔적을 넘어 여성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해 온 의미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여성의 이름으로 지역사를 써 내려가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이야마당은 4년 만에 재개된 생애구술사이자 아홉 번째 충북여성사 발간물로, 지역 여성의 노동과 기억, 삶의 존엄을 조명하는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행사 관련 문의는 충북여성재단 정책연구팀에서 받고 있다. /김재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