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상호작용 ②: 교실, 또 하나의 생태계
[내일을 열며] 김창주 청주대학교 물리치료학과 교수·석우재활서비스센터장
교실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 안에는 감정, 분위기, 관계의 흐름도 공존한다. 수강하는 학생의 표정 하나, 교사의 말투 하나가 강의의 온도를 바꾼다. 그래서 강의실은 하나의 생태계이다. 그 속에서 교사와 학생은 서로의 환경이 되어, 배우고 변화한다.
브론펜브레너(Urie Bronfenbrenner)는 인간 발달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 체계를 설명하며, 가정, 학교, 사회문화가 상호작용할 때 개인의 성장 방향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이 이론에 근거한다면, 교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현장이다. 아이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지식뿐 아니라 관계의 방식을 배우는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사실 몇 해 전까지 이러한 인식이 없었던 필자가 강단에 서는 강의실은 꽤 경직된 공간이었다. 언제나 학생들이 말이 적고, 표정이 굳어 있었다. 어쩌면 나의 외모나 목소리 톤이 괘나 딱딱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수업의 시작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강의실에 몇 분 일찍 도착해 출석을 부르기 전, 그 날의 날씨나 수업 주제에 어울리는 음악을 조용히 틀기 시작했다. 봄날엔 잔잔한 피아노곡을, 비 오는 날엔 부드러운 재즈 선율을. 음악이 강의실을 채우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씩 풀리고, 학생들끼리 나지막이 웃음이 오갔다. 그리고 나는 음악이 서서히 잦아드는 순간, 화면을 띄우고 강의를 시작했다. 이전에는 출석 후 자료를 준비하는 동안 떠들던 강의실이, 지금은 음악이 멈추면 자연스럽게 조용해진다. 그 짧은 순간의 전환이 학생들의 마음을 ‘집중’으로 이끌고, 나 역시 그 고요 속에서 수업에 깊이 몰입하게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이 경험은 내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교실의 질서는 지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로 유도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음악이라는 감각적 매개가 교수와 학생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주었고, 그 결과 강의는 훨씬 더 부드럽고 깊어졌다.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더 적극적인 태도로 강의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환경적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변화다.
이쯤되면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행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것은 교실이라는 작은 생태계 안에서 관계의 리듬을 조율하는 것이고, 교사는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라, 관계의 설계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수업을 준비할 때 ‘무엇을 가르칠까’만큼이나 ‘어떤 분위기에서 함께 배울까’를 고민한다.
소아물리치료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치료사 앞에서 긴장하거나 위축될 때, 아무리 좋은 기술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가 “선생님, 저 이거 해볼래요!”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는, 비슷한 과제를 수행하더라도 움직임의 질이 전혀 다르다. 그만큼 상호작용이 곧 성과의 질을 결정한다. 결국 교실이든 치료실이든, 발달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환경이다. 교실은 지식이 흘러가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성장하는 환경이며, 교육은 사람을 변화 시키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 함께 변하는 일이다.
교실의 생태계가 건강할 때, 학생들은 배움을 사랑하게 되고 교수자는 가르침을 통해 다시 성장한다. 어느덧 찾아온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계절에서 우리의 교실이 그 따뜻한 순환의 현장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