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원산지의 진짜 얼굴을 밝힌다…관세청, 원산지 검증 혁신 공개
데이터로 움직이는 새 검증 방식 위험 신호를 읽는 AI 분석 사례 수출기업 지원체계 재정비
대전 KW 컨벤션의 공기는 이날 유난히 날카로웠다.
원산지를 둘러싼 국제 규범이 복잡해지고, 공급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관세 현장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이 연 '2025 원산지검증 우수사례 발표회'는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한 실험실 같은 자리였다. 책상 위 서류만 들여다보던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읽고 해석하는 감식안이 새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이어졌다.
전국 세관에서 제출된 24편 중 본선을 통과한 8편의 발표는 공통된 흐름을 드러냈다. 대규모 언어모델과 멀티모달 분석이 원산지 검증의 손과 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AI는 해외 공장의 생산량 변동, 특정 품목군의 위험 패턴, 국가별 공급망 재편 흐름을 병렬로 읽어내며, 예전에는 간파하기 어려웠던 '위험의 그림자'를 포착하고 있다. 이미 관세청은 10종의 챗봇을 도입해 우회수입 감지, 생산 흐름 분석 등 다양한 임무를 맡기고 있으며, 이번 발표회는 이 기술들이 실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생생하게 증명했다.
대상을 받은 인천세관 자유무역협정검증1과 3팀은 기업의 방대한 품목 구조를 입체적으로 묶어 위험군을 선별하는 통합 진단 모델을 공개했다. 수입 기록, 품목 구성, 원가 흐름 등을 한 판 위에 펼쳐 놓고 위험도가 높은 부분을 정확히 집어내는 방식이다. 심사위원들은 "검증을 분석 생태계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남겼다.
최우수상은 서울세관과 부산세관이 차지했다. 서울세관은 AI 분석과 수출환급 데이터를 결합해 원산지신고서의 허위 여부를 추적하는 방식을 소개했고, 부산세관은 가죽·모피류의 형태·가공 특성까지 AI가 재구성해 원산 흐름을 판독하는 기법을 선보였다.
두 사례 모두 기존 방식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신호의 뉘앙스'를 AI가 찾아낸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명구 관세청장은 글로벌 관세정책 환경이 거세게 바뀌는 속도에 주목하며 "특혜와 비특혜 원산지 모두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의적 허위 기재에는 엄정 대응하되, 우리 기업이 스스로 관리 체계를 강화할 수 있도록 '원산지검증 평가회의 제도'를 통해 분석과 개선 방향을 함께 제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표회는 원산지 검증을 데이터 기반의 정밀한 감시 체계로 빠르게 재편하고자 하는 관세청의 의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대전=이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