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맥 회동’은 친목을 위한 자리였을까?
[기고] 강전민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생
최근 강남의 한 치킨집에서 열린 ‘깐부 회동’이 화제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이 고급 호텔이나 프라이빗 룸이 아닌 평범한 치킨집에서 치맥을 즐겼다는 사실은 대중들이 신선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젠슨 황의 딸이자 엔비디아 Senior Director 매디슨 황이 장소를 ‘깐부 치킨’으로 정한 이유도 경쟁보다 협력, 이해관계보다 동맹이라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회동은 단순히 치맥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이들의 만남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AI–반도체–모빌리티’다. 엔비디아는 AI의 두뇌를 설계하는 기업으로 GPU와 AI 칩, 그리고 연산 플랫폼(CUDA 등) 을 통해 전 세계 인공지능 생태계를 주도한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가 설계한 AI 칩을 위탁 생산(파운드리) 하며, 고대역폭 메모리와 첨단 패키징 기술을 더해 AI 연산 효율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현대자동차는 엔비디아의 AI 칩을 실제 모빌리티에 이식한다. 커넥티드 카, 자율주행차 등 AI 칩이 새로운 두뇌가 되어, 기존의 이동 수단을 하나의 지능형 플랫폼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즉, 엔비디아가 칩을 설계하고, 삼성이 이를 구현하며, 현대자동차가 모빌리티에 적용하는 산업 간 ‘깐부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결국 제조업이 단순한 생산 체계에서 벗어나 AI가 공정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생산 효율을 높이고 설계에 반영이 되며, 결과가 제품 혁신으로 이어지는 ‘학습하는 산업’, 즉 미래형 제조업으로 변화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제조업은 효율과 속도를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정밀한 하드웨어와 숙련된 인력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해 왔지만, 이제는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다가올 AI 시대의 제조 경쟁력은 AI 학습을 통해 데이터와 지능을 얼마나 빠르게 내재화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데이터를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제조 현장과 제품이 스스로 판단하여 최적화하는 구조를 갖추지 못한다면, 효율은 곧 한계로 바뀌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제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단순히 AI 기술 도입을 넘어, AI를 산업 생태계의 핵심 엔진으로 통합해야 한다. 공장은 단순한 생산 공간이 아닌 데이터 학습 플랫폼이 되어야 하며, 제품은 단순한 하드웨어가 아닌 사용자 맥락을 이해하는 서비스 개념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은 기회다. 엔비디아의 AI 역량을 비롯해 글로벌 기술 자원을 얼마나 유연하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3차 산업혁명 시대 제조 강국의 명성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며, ‘지능형 산업국가’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세 글로벌 기업 총수의 ‘치맥 회동’은 단순한 만남이 아닌 한국 제조업의 다음 장을 예고한 상징적 장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