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동안 쓴 편지
[월요일 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그해에도 늦은 가을이었다. 곱던 단풍들도 누추하게 퇴색이 되고 스산한 바람이 나무들을 흔들고 지나갈 때마다 우수수 낙엽이 되었다. 화려하던 꽃들도, 꽃보다 아름답던 단풍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자연의 이치를 배우면서 겸손해지는 계절이다.
차창 밖의 풍경들이 산도 들도 모든 것들을 비워내고 있었다. 이른 아침 서둘러서 처음 가보는 초행길을 아들을 태우고 달려가고 있었다. 어느덧 이십여 년 전의 흑백사진 같은 추억이 되었다. 논산 훈련소가 가까워지니까 ‘입영환영’이라는 현수막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푸르른 오월 같은 청년들이 연병장에 모여들고 있었고 가족들과 짧은 이별을 하는 풍경들이 덩달아서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필자도 아들도 의연한 척하고 웃으면서 포옹하며 등을 토닥였지만 눈물은 서로 애써 보이지 않았었다.
연병장으로 뛰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애잔하면서도 든든해 보였다. 입영식이 시작되고 나의 아들에서 늠름한 세상의 사나이가 된 듯 느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난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이별이 슬퍼서 흘린 눈물이 아니고 감사와 감동의 눈물이었다. 아들이 있어서 이런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엄마로서의 행복한 눈물이었다. 입영식이 끝나고 부모를 향한 경례를 한 후 구령에 맞춰서 멀리 사라져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서 있다가 돌아오는 길이 쓸쓸했었다.
그날 밤부터 난 아들에게 날마다 편지를 썼다. 논산 훈련소에서 백일간의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을 때까지 백일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편지를 썼다. 입대 후 며칠이 지났을까! 소포가 배달되었다. 아들이 입대할 때 입고 갔던 구겨진 옷 갈피 속에 쪽지 편지가 들어있었다. “어머니! 저는 아주 편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편하고 재미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ㅎㅎ” 짧게 함축된 내용이지만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끝부분에 웃는 표현까지 써 보낸 쪽지 편지를 난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그때 아들의 체취가 배어있는 옷에서 나던 아들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오랫동안 빨지 않고 아들 책상 위에 두고 얼굴을 묻어보고는 했었다. 그날 밤도 나는 아들에게 많이 보고 싶지만 담담한 척 애써 무심한 듯한 편지를 썼다.
그렇게 가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조용필 가수의 콘서트가 청주 체육관에서 있었다. 좋아하던 가수이고 흔치 않은 기회라서 서둘러 예매를 하고 오빠 부대의 일원이 되어 공연을 보았다. 그때만 해도 내 나이가 마흔 후반의 젊은 열정이었으니 스탠드에 앉지도 않고 서서 함께 뛰며 공연을 즐겼다. 공연을 보면서 위대한 한 아티스트가 써 내려가는 그의 역사 속에 내가 있는듯했었다. 그날 밤도 나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아들 오늘 엄마는 조용필 콘서트를 보았다. 누군가는 역사를 만들어가고 나는 그 순간을 즐기고 있더구나! 같은 시대에 같은 시공간에서 살아가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자기만의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오늘 엄마의 공연 소감이었다. 아들도 엄마도 최선을 다해서 훗날 시시하지 않은 우리만의 역사를 만들어 가보자!”
아들은 백일간의 훈련을 마치고 퇴소식을 하는 날 연대장 표창을 받고 경기도 양주에 후방 부대로 배치를 받았다. 행정병으로 군 복무를 잘 마치고 전역을 하였다. 아들의 전역 가방 속에는 훈련병 시절에 내가 보냈던 백통의 편지 뭉치가 들어있었다.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소중한 보물이 되어서 이사 갈 때도 귀중품처럼 챙겼다. 이번 추석 명절에 방송국에서 조용필 콘서트를 마련했다. 그는 늙지 않았지만 여전히 고독한 영웅이었다. 사람들은 음악밖에 모르는 그의 절대적인 고독을 사랑하는 건지 모른다. 오래전 아들에게 썼던 편지가 생각났다. 빛바랜 백통의 편지 뭉치를 꺼내서 읽어보았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린 어떤 역사를 만들며 살아왔을까! 오늘 지금 이 순간도 지나고 나면 다 역사가 되는데, 새삼 내가 머물러 있는 지금 이 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