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가 줄었어요

2025-11-24     충청일보

[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바람이 차다. 어둑한 사무실 문을 열고 불을 켜면서 그녀 생각이 났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두고 마주하고 싶은 그녀, 화장실 쪽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역시 새벽부터 일이 시작 되었는가 보다. 사무실을 밝히고 따뜻하게 난방기를 가동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미 한 시간 이상 작업을 한 터라 추위에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 건물에 사무실을 정하고 회사를 창업한 지 15년이 지났는데, 그녀는 그 무렵부터 건물 청소를 하셨고, 지금은 70세가 훌쩍 넘었다. 키도 크고 단단하게 생기기도 했지만 젊어서부터 노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8층 건물을 혼자 청소하시는데도 늘 유쾌하게 보였다. 한여름 폭염에는 땀이 범벅이고, 한겨울에는 살얼음 물을 만지면서도 이 나이에 일하고 있는 자신이 늘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관절염이 있으신지 걸음걸이가 조금 삐딱거리기는 하는데, 그녀가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반질반질하였다. 아마도 그런 긍정적인 성실함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 건물에서 일을 하고 계신 듯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문학 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하고, 건강 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데 얻어 놓았다가 나중에 퇴직하고 심심하면 읽으신다고 하여, 소설책이나 수필집 등 책장 정리를 할 때마다 여사님께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니 서로 대화가 잘 통할 수밖에. 그녀의 남편이 텃밭을 가꾸다 보니 상추며 호박, 가지 등을 나누어 주셨고, 우리는 매년 명절에 작은 선물 상자라도 안겨 드렸다. 건물 어디서라도 만나면 반갑게 마주 웃으며 인사를 했고, 며칠 출장을 갈 일이 생기면 궁금해 하실까봐 일정을 문자로라도 알려드린다.

며칠 전에도 우리는 차를 마셨다. 아주 잘되던 업체의 ‘쓰레기가 줄어서 큰일’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심각했다. 전에도 들었던 얘기였지만 그 소리가 더욱 실감 났다. 노후 준비를 위해 구입한 상가가 비어있는지 일 년이 지나도록 문의조차 없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둘이 얘기를 하다보면 어떤 사무실이 돈을 잘 벌고 어떤 사무실이 어려운지 설핏 짐작도 가능하였다.

유흥업소가 있는 층의 화장실이 예전에는 술 취한 사람들의 흔적으로 고역이었는데 지금은 깨끗하단다. 그곳도 손님이 없다는 얘기다. 제법 잘되던 아래층 김밥집이 임대료를 올려주지 못해 연초에 철수했는데 아직도 그곳이 비어있다며,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있다는 말 요즘은 안 통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주차장이 헐렁해도 장사가 안되는 것이고, 사업장에 쓰레기가 줄어도 장사가 안되고 있는 것이다.

건물 내 직업학교 교장님도 한 말씀 보태신다. 예전에 골프연습장 사장과 주차장 요금 징수 문제로 가끔 얼굴 붉혔는데 그 시절이 좋았던 때라고 하신다. 요즘은 주차 문제로 얼굴 붉힐 일도 없고, 지하 2층 주차장이 가끔 헐렁할 때도 있어서 경기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한다. 자영업자 폐업은 물론 제조업 폐업률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이즈음, 쓰레기가 넘쳐나고, 소음이 귀를 거스르게 하고, 주차할 곳이 없어서 빙빙 돌던 때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 복잡하고 불편한 것이 식탁에 밥숟가락 놓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웃어넘길 일이다. ‘손이 편하면 입도 편해진다.’라는 옛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