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유의 사이언스 - 우리나라 지도의 역사

2008-07-23     윤용현

대동여지도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우리 선조들은 좌도우서(左圖右書)라 하여 왼 편에 지도를, 오른편에 서책을 두고 가까이 하였다. 지도는 통치와 행정, 군사적인 필요성과 사람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자가 있는 곳, 이웃 지역, 길 등에 대한 지식을 정리하고 남기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는 고구려 고분 벽화인 요동성총(遼東城塚)에 그려진 요동성곽도이며, 선조들이 남긴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는 1402년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混一疆里歷代國都之圖』이다.
18세기 이전 까지는 군현지도 보다는 전국지도나 도별지도, 그리고 군사지도와 같은 특정 목적의 지도가 많았으며, 이들 지도들도 일부 특수한 지역의 지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소축척지도(小縮尺地圖)였다. 18세기 이후 조선의 지도에는 큰 변화가 보이는데 바로 대축척지도의 발달이다. 축척이 큰 지도가 만들어짐에 따라 지도의 크기도 대형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지도에 표시되는 내용이 정확, 상세하고 풍부해졌다.
조선 후기의 대축척지도의 발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지도학자는 정상기(1678~1752)이다. 김정호보다 한 세기 앞서 활약했던 실학자인 정상기는 당시의 지도 제작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동국지도 東國地圖』를 제작하였다. 정상기의 지도는 일정한 축척을 사용하여 도별 지도를 합하면 전도가 되도록 고안되었으며, 축척인 백리척(百里尺)을 표시하여 거리를 계산할 수 있도록 한 점, 축척 약 1:420.000의 대축척지도로 커짐에 따라 도로·봉수·지명 등을 상세하게 나타낸 점, 조선의 윤곽 특히 북부 지방의 윤곽이 정확해진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후의 조선 지도들은 대부분 이 지도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았다. 우리나라 지도의 백미는 김정호가 1861년(철종12)에 처음으로 기호를 사용하여 만든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이다. 이 지도는 내용상으로는 지지(地志)와 조선 후기에 발달하였던 실학적 지리학의 성과를 집대성하여 풍부하고 상세한 정보를 수록함은 물론, 지도학적으로는 조선 후기에 꾸준히 이루어졌던 지도 발달의 성과를 종합한 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축척 약 16만분의 1, 남북 22층으로 되어 있다. 각 층은 세로 30.2cm, 가로 20.1cm 크기의 8폭으로 접을 수 있어 가고자 하는 곳의 지도를 한층 떼서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22층을 순서대로 접합하면 세로 7m, 가로 3m에 달하는 커다란 한 장의 지도가 된다. 또한 도로에 십리(당시는 5.4㎞)가 점으로 표시되어 있고, 두 점 사이가 산지는 좁고 평지는 넓어 거리뿐만 아니라 등고선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 지도는 신헌, 최한기 등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는데 당시 만든 판목의 일부가 현재 숭실대 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있다.『대동여지도』의 가장 뛰어난 점은 전국지도·도별지도와, 상세한 군현지도의 장점을 합하여 군현지도 수준의 풍부한 내용을 지니면서도 전국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일목요연한 대축척 전국지도를 만들었던 데에 있다. 또한 전국지도를 휴대·열람하기에 간편한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 형태로 고안하고, 목판본으로 인쇄하여 간행을 함으로써 지도의 대중화와 보급에 기여하였다. 그동안 관청에 소장되었던 각 지역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그린 간편한 지도를 일반 민간에서도 볼 수 있고, 지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줄여서 92만분의 1로 만든 '대동여지전도'를 만들었는데, 이 지도에 대마도가 우리 땅으로 표기되어 있다.최근 일본이 교과서에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명기하는 시점에서, 독도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더불어 대마도에 대한 좀더 체계적이고 명확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