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루의 종류·모양

먹을 갈아 먹물 만들때 사용한 도구

2008-09-17     윤용현
▲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근대 이전 문방사우(文房四友)인 종이·붓·먹·벼루는 지식의 습득과 전달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이러한 문방사우 가운데 벼루는 소모성이 있는 붓 종이 먹과 달리 반영구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 중요도를 더하였다.
우리나라의 벼루는 문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삼국시대의 벼루는 발달된 토기 만드는 기술을 응용하여 도제벼루가 많이 사용되었으며, 이후 청자, 분청, 자기 만드는 기술을 응용하여 벼루를 만들었다.
고려시대부터 점차 돌을 재료로 벼루를 만드는 것이 보편화된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돌의 시대구분이 쉽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발달로 문(文)을 숭상하고, 곁에 두고 늘 사용하는 벼루는 일종의 장식품으로 장식적인 기능이 많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벼루의 형태는 장방형(長方形)·원형·풍자형(風字形)·타원형 등이 있으며, 장방형이 기본형이다. 장방형의 벼루를 장방연(長方硯) 또는 사직연(四直硯)이라 부르고, 장방형이되 벼루 바닥과 물집이 따로 없이 민자로 만든 벼루를 판자와 같다하여 판연(判然)이라 부른다.
벼루의 주요 구조를 보면, 먹을 갈고 먹물을 보관하는 바닥과 물집으로 구성되어있다. 벼루의 각 부분엔 나름대로 이름이 있어 먹을 가는 부분을 연당(硯堂), 또는 묵도(墨道)라 하고 먹물이 모이도록 된 오목한 곳을 연지(硯池), 묵지(墨池), 연해(硯海) 등으로 불리었다.
벼루가 갖추어야할 요소로는 먹이 잘 갈려야 하고 고유의 묵색이 잘 나타나야 한다. 또한 먹물이 잘 마르지 않아야 하며, 돌이 너무 무르거나 단단하지 않아 마모가 심하지 않고 벼루 만들기에 적합하여야 한다.특히 봉망이 잘 서있어야 한다. 봉망이란 연당 표면의 꺼끌꺼끌한 면을 일컫는데, 여기에 물을 붓고 먹을 마찰시킴으로써 먹물이 생긴다. 따라서 봉망의 강도가 알맞아야 한다.
이 봉망은 돌의 재질에 따라 다른데 암질 조직이 단단하고, 여림이 고루 섞여있어 먹이 마찰하면서 잘 갈리도록 돌 조직이 구성되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암질의 조직을 관찰한 결과 벼루 만들기에 적합한 돌을 골라 벼루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또 학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벼루에 사용되는 무늬도 해와 달, 포도, 대나무, 매화, 소나무, 난초, 연꽃, 용, 호랑이 등 지조와 절개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 많이 차지한다.
또한 벼루를 다룸에 있어도 세수는 못할지언정 벼루 씻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고사신서(攷事新書)에 실린 벼루 씻는 법(洗硯法)을 보면 다음과 같다. '벼루는 매일 씻어 주어야 한다. 2∼3일이 지나면 먹의 색이 줄어든다. 가령 씻지 못하면 반드시 물이라도 바꾸어 준다. 봄·여름 습기가 찌는 듯 할 때 먹을 오랫동안 남겨두면 응고되어 못 쓰게 된다. 자주 세척하여 먹을 빼고, 벼루를 씻는데 뜨거운 물을 사용해서는 안 되고 또한 부드러운 털이나 헌 중이로 항상 문지르고 조각 달인 물로 씻으면 좋다. 벼루를 씻을 때 연봉각(蓮蓬殼) 또는 고탄(枯炭))을 사용하거나, 또는 반하(半夏)를 잘라 문지르면 심하게 엉긴 먹을 없앨 수 있다.'
요즘은 실용적인 것이 각광을 받고 있다. 만년필을 거쳐 볼펜 그리고 이제는 컴퓨터를 이용한 문서작성, 음성인식 등 발달해가고 있다. 놀라운 속도로 발달하는 지식정보화 사회에 적응하고, 앞서가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과 기술개발에 뒤쳐질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인간은 기술로만은 살아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