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아이로 존재하기
김재국 세광중 교사·문학평론가
[김재국 세광중 교사·문학평론가] 학교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 교육은 마을이나 가정의 몫이었다. 산업화시대가 진행되면서 마을이나 가정은 갈수록 분주한 모습을 보이다 마침내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학교의 태생은 생래적으로 이러한 상황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점차적으로 사회는 복잡해지고 전통적 가족구조는 핵가족으로 변하여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해지며 경제적으로는 양극화로 치닫게 된다.
아동학대 또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기이한 학대를 당한 아동들은 후유증 때문에 성장하면서도 공격적 성향을 지닌다. 이러한 아동들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면 또 아동학대를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아동복지법에 의하면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 등 가혹행위를 하거나 유기, 방임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우리나라 공동체지수가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정과 우리를 강조하는 사회지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웃이나 친구 등 사회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꼴찌라는 것이다.
공동체 파괴 이유로는 보편화된 아파트 문화를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문화가 앞집과 윗집, 아랫집과 단절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 간의 왕래까지 차단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끼리도 왕래가 되지 않는데 이웃 마을과 소통이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공동체란 사전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유기체를 이루고 삶을 공유하면서 공존하는 조직이다. 그것은 단순한 결속보다는 더 질적으로 강하고 깊은 관계를 형성한다. 때문에 정서적 유대나 공동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갈등조정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가 파괴된 지점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훼손된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갈등 해결에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다. 때문에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공동체의 관심과 애정이 요청된다. 교육공동체 모두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아동학대 발견 즉시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동학대는 누구 한사람, 어느 한 단체의 노력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학교와 지역사회의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소통과 협업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와 지역사회의 마을을 연결하는 마을교육공동체 조성이 절실해진다.
마을교육공동체를 설립하여 그 동안 전면 학교에 맡겨 두었던 배움과 돌봄의 권한을 마을로 되가져오는 방안을 모색해보자. 마을교육공동체가 구축될 수만 있다면 아동학대 사건은 더 이상 되풀이되기 어렵다. 아동은 이미 너 아이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