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사과할 때 골프 친 의원
[충청일보 사설]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리며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한편에서 집권 여당의 친박(친박근혜)계 국회의원 4명이 서울을 떠나 충북 단양에서 골프를 쳤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당시 골프를 쳤던 의원들에게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의원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정국이 혼란 상태에 빠지며 국민 전체가 참담함을 느낄 때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이 한가하게 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건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다.
당사자들은 '밥 한 끼 먹은 친선 모임이고 비용도 각자 부담해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지만 이 보도를 접한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못해 요즘 촛불 집회에서 꺼내 들리는 '이게 나라냐'에 빗대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이냐'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를 촉발한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고 국민은 허탈과 분노, 상실감 속에 차디찬 바닥에 앉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판에 국민의 뜻을 받든다는 국회의원이 골프채나 휘둘렀다는 건 국민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더구나 그 자리에 적절치 못한 골프로 제명당한 전력이 있는 의원까지 합류했다고 한다. 해당 의원은 2006년 당의 골프 자제 지침을 어기고 가뜩이나 수해(水害)로 난리를 겪는 강원도 정선에서 사업가와 어울린 골프로 말썽을 일으켰었다. 당사자는 골프는 치지 않고 라운딩이 끝난 뒤 뒤풀이에만 참석했다고 하나 그렇다고 비난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뿐인가. 모임을 주선한 사람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돼 재판 중인 골프장 소재 지역구 의원이다.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함에도 지금의 나라 사정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듯 의원들을 불러 모아 잔디밭을 누볐다. 그래 놓고 마음에 걸렸던지 예약자는 다른 사람 이름으로 했다니 이런 게 바로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의원들은 "각자 비용을 내서 큰 문제가 없다"고 마음 편한 소리를 하는데 아마 '김영란법'이라고 하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을 의식한 것 같다. 접대받은 게 아닌 내 돈 내고 친 것이니 괜찮지 않으냐는 것인데 이는 법을 지켰는지, 어겼는지가 아니라 당시 상황이 그렇게 느긋하게 골프장에서 친목 모임을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여유로웠냐는 것이다.
그때는 비선 실세의 국기 문란, 헌정 질서 유린으로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국민의 속은 뒤집혔을 때다.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는 폭로성 발언'이라며 사태를 인정하지 않았던 대통령은 속속 드러나는 정황에 고개를 숙인 때였다. 국민은 남녀노소, 지역, 진보·보수, 애·어른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울분을 토했고 해외에서도 유학생과 교포들이 고국을 걱정하며 집회를 여는 것으로 이어지던 때였다.
그런 엄중한 시기에 대통령과 같은 배를 탄 여당 국회의원들이 한가롭게 골프를 쳤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자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들이 과연 국민과 나라를 위해 뛰는 사람들인가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