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심장은 안보(安保)다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

2017-06-08     충청일보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 너무 잊고 살은 게 많아 미안한 날들이다. 26년 전, 문예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KBS청주방송국을 들어설 때마다 건물 정면 '만남의 광장'에 빽빽하게 나붙어 애끓던 절규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글씨가 옅어지면 시야를 떠날까봐 한주일이 멀다하고 다시 써 붙인 것도 있고 아예 몇 달 내내 광장을 지킨 할아버지의 초췌함도 살아난다. 실오라기 같은 기약 뒤엔 꼭 만나서 얼싸 안아야할 피붙이의 한(恨)을 밤샘으로 지킨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도 뜨거웠다.

 혈육을 찾은 사람들 "꿈인지 생시인지"를 반복하며 까무러치는, 그러다 심장 박동까지 멎게 했던 '잃어버린 30년' 뒤엔 어느 덧 한국전쟁 66주년 애국의 넋이 숱한 질문을 던진다. 6월의 영상조차 우리 곁에서 시나브로 묻히지만 딱히 대체된 것도 없다. 휴전선을 텄던 경의선과 동해선 기차소리에 비무장 지대를 달구던 휘파람의 감개도 잠시, 요즘 들어 부쩍 북한 '핵' 야성(野性)으로 세계가 시끄럽다.

 2010년 3월 26일 백령도해상에서 우리 해군 천안함이 피격돼 두 동강 난 채 772함 수병 마흔 여섯 명 아들은 물살 센 바다의 별로 잠들었다. 당시, 침몰 해역에 달려와 실종자를 수색하던 98금양호까지 끝내 침몰한 충격 앞에도 분노나 응징보다 조작으로 미심쩍어 했잖은가. 그 후, 북한은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절대지존의 핵을 앞세워 연일 일촉즉발 위기를 조장해 왔고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된 미사일발사로 국제사회의 추가대북제재가 강경해지는데 비해 정작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다.

 대북 유화책이 대화로 먹혀든다면 몰라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예상"을 떨치지 못한 현실에서 안보체력은 글쎄다. 도발 행위의 경우 보고 늑장은 상황 끝과 마찬가지다. 보고 단계가 너무 여럿이면 골든타임을 놓친다. 최근, 애국이 녹슬었다고 개탄한다. 국론 분열에 의한 총체적 대응 능력 부실 때문이다. 작금의 남과 북은 대화조차 직통으로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우린 심장이 없어요" 아닌가.     

 '때는 이 때다' 하고 트럼프에 엎드려 미국의 최고 귀염둥이가 됐고 초등학교 교과서 기존 3종과 나머지 2종까지 독도를 자기들 영토로 표기해 열공케 하는 일본, 소녀상을 빌미삼아 툭하면 역사 망언으로 '못 먹는 감 찔러보기'의 치졸한 속내를 드러낸다. 중국 역시 사드 배치에 발끈, 무역과 한류 문화 차단 등 타격을 집중하더니 '속국' 운운을 맞장구로 뒤통수를 치고 있잖은가. 새 정부 특사는 의전조차 홀대된 채 호되게 당하고 왔다. 이러다간 어떤 벼랑 끝에 나뒹굴지 한 치 앞 분간조차 어렵다. 우방이나 혈맹도 더 이상 방파제 아님을 깨닫게 된다. 당당한 국격(國格)의 물꼬를 텄으면 좋으련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외교 안보야 말로 어정쩡해선 안 된다. 6월 어둠이 걷힌 탄탄한 나라, 우리 심장을 찾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