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실체적 진실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2017-09-14     충청일보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학업이나 근무를 일정 기간 동안 쉼을 일컫는 말, '휴가'다. 그동안 번듯한 제도 뒤로 숨어 이런저런 핑계가 먹혀왔다. 나와 가족 직장부터 건강해야 주체적 영역도 넓혀진다며 '쉴 권리'를 먼저 누린 문대통령의 독려에 선제적 대응이나 긴급 사태조차 모르쇠로 법인카드 사용과 약사회 직원 차량까지 이용해 가며 휴가부터 챙긴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비롯한 몇몇 각료, 그 즈음 경제정책방향 합동브리핑에 충혈된 눈과 부르튼 입술을 추스려 '지금은 일할 때'를 보여주었던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결국 휴가에 들어 조직의 속내를 편하게 이끌었다.

 휴가야말로 세상과의 소통과 교감을 잇는 보너스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요리된 맛깔스런 여유요 생명이요 미래다. 모처럼 일감 몰린 성수기까지 제발 좀 쉬자는 사측 애원에 세상 변한 거 맞단다. 이래저래 조심스러운 건 갑(甲)을(乙) 똑같다. 필자에겐 다른 측면의 아픔이 있다. 백세 시대라지만 아직 칠순의 문턱을 오르기 전, 대학 절친 40여년 지기(金甲式)가 올해 초여름 머나먼 저승 휴가를 떠났다. 고달픈 살림살이에도 '바다의 노래·청주시민 노래' 작사 상금 전액을 소외이웃에 기부하는 등, 더불어 함께한 그의 삶은 헌신 자체였다.

 아직 내 휴대폰에 생생하게 찍혀있는 카톡, "내 휴가가 너무 긴 게 안쓰러워 인지 병실 밖으로 아침마다 이름 모를 새 한 쌍이 날아와 고운 노래로 날 위로하네." 교육의 무거운 짐을 쉼표 없이 풀어내느라 꺼풀만 남은 장단지가 평생 고집스런 휴머니즘을 대변해 준다. 기약 없는 친구의 영혼 앞에 휴가의 실체적 진실 쯤 허망할 뿐이다.

 휴가 모양새도 다양하다. 캠프나 여행이 아니더라도 기댈 수 있는 피붙이와 뒹군 만큼 마음도 커지고 주위의 온도 역시 높아진다. 집중폭우에 엄청난 수해를 입은 현장을 찾아 봉사 휴가로 땀 흘린 사람, 밀양 송전탑 공사재개를 위해 주민 곁에서 휴가를 몽땅 쓴 산업통산부 장관의 사례처럼, 자기 그릇을 굽는 시간이다.

 휴가가 얼마나 말랑말랑한 동화 인지는 본인 밖에 모른다. 비록, 급할지라도 여유를 달궈 자신을 찬란하게 만든다. 상사나 동료의 눈치코치에서 자유로울 때 비로소 소통과 지혜가 움쭉 자라는 것처럼 훌훌 털고 채움을 반복하며 여문다. 문제는 '과유불급'이다. 그냥 먹고 마시고 일그러지다보면 되레 무너진 실체에 또 다른 치유가 필요하다. 스스로의 정신세계와 감각까지 다듬을 수 있는 긍정적 충전, 진정한 휴가 문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