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리의 미학(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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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천호 분평초등학교 교감 |
우수리는 말 그대로 물건 값을 제하고 거슬러 받는 잔돈이나, 일정한 수량에 차고 남는 수를 뜻한다. 그동안 우리 충청북도교육청 산하에 근무하는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랑의 우수리 모금 운동이 전개되어 왔다.
매달 지급되는 교직원들의 봉급에서 천원 미만의 금액을 희망자에 한해 자발적으로 공제하는 운동이다. 2005년도에서 2008년도까지 이렇게 해서 모은 금액이 자그마치 1억 6천 2백만 원이라고 한다. 또한 이 기금은 도내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난치병 학생 89명에게 전액 지원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가슴 훈훈해지는 우수리의 미학이 아닐 수 없다.
충청북도교육청이 2003년부터 농협중앙회와 제휴하여 만든 충북교육사랑 카드 역시 우수리의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도내에 근무하는 만여 명의 교직원이 가입한 충북교육사랑 카드는 사용금액의 일정액을 복지기금으로 조성하고 있는데, 지난해 1억5천여만 원의 기금을 모았다고 한다.
이 기금 역시 도내 소년ㆍ소녀가장 학생, 난치병 학생, 조손가정자녀,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전달했다고 하니 우수리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더욱이 회원 수와 사용금액이 점점 늘어나 올해는 더 많은 기금을 도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수년 전, 영동에 있는 어느 학교에 근무할 때 일이다. 같은 학년을 맡았던 여선생님은 방과후 시간을 잘 활용하는 분이었다. 일학년 아이들이라 정규 수업은 오전이면 끝나지만 집이 멀어 대부분 학교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그런데 그 여선생님은 일학년 아이들을 늘 고학년들이 타고 가는 버스로 늦게 하교시킨다.
농촌이라 집에 돌아가도 부모들이 일하러 가서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매일 아이들을 교실에 남겨 한글공부를 시키는 것이었다. 오월쯤으로 기억이 되는데, 옆 반 교실에 들렀다가 일학년 아이들이 제목이 있는 일기를 한 장 빼곡히 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시기 우리 반 아이들은 겨우 그림일기 몇 줄 쓰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방과후 시간에 선생님이 베푼 사랑의 가르침이 시골 아이들에게 이토록 큰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말 나온 김에 숨겨둔 이야기 하나 더 꺼내야겠다. 내가 평소 존경하는 그 선생님은 주말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꽃동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 선생님은 삼십 여년이 넘도록 꽃동네 봉사활동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저녁모임을 하는 장소에 그 선생님 부부가 갓난아기를 안고 참석했다.
봉사활동을 갔다가 버려진 미혼모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입양했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품안의 자식들 키워 놓고 조금 여유 있을 시기인데, 그 내외분은 갓난아기에게 새로운 삶을 심어주는 일에 여분의 시간을 할애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갓난아이는 잘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고, 그 선생님은 괴산에 있는 학교에 교장 선생님으로 발령이 났다.
사람들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본전의 삶이 있을 테고, 또 살아오는 동안 이것저것 갈무리 못한 우수리 삶도 있을 것이다. 나 자신 뒤돌아보면 부끄럽게도 여태껏 본전의 삶을 살기에도 바빴다. 하루 내내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혹 손해 보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그러다보니 남에게 베풀기는커녕 따스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우수리는 쓰고 남은 돈이건, 차고 남은 물건이건, 여분의 시간이건 그 자체만으로는 다소 미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우수리들이 모여 뜻있는 일에 쓰이면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게 바로 우수리의 美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