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의 대하 장편소설 '금강'

제 1부 1장 달빛 고요한 밤에

2009-05-12     한만수

▲ <삽화=류상영>

오씨는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 손등으로 입술을 쓰윽 닦았다. 오랜만에 포식 좀 해 보자는 얼굴로 개고기가 익었는지 안익었는지 확인도 안하고 덥석 집어서 볼이 미어터져라 입안에 밀어 넣었다.

"젠장, 어뜬 놈은 부모 잘 만나서 나보다 시 살이나 어린놈이 부면장 질을 하고, 어뜬 놈은 제우 쥐똥만한 동리 구장질이나 하고…… 가구 수나 많아? 제우 서른 몇 가구뿐이라 봄가을로 구장수곡 걷어 봤자 출장 온 면서기들 닭잡아 주다보믄 등골만 희고……"

"그릏게 억울하믄 구장님도 선거운동 좀 해유. 부면장님이 실력이 좋아서 부면장님이 됐슈? 국회의원 선거 때하고 대통령 선거 때 두발 벗고 맨발로 뛴 댓가지."

윤길동은 취한 다는 얼굴로 길게 트림을 하면서도 계속 고기를 집어 먹는다.

"선거운동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녀. 그거 할라믄 간쓸개 다 빼놓고 해야 햐. 지덜 족보 흠쳐가서 골동품상에 팔아먹은 놈 앞이서도 허파 빠진 놈처럼 실실 웃어야 하능기 선거 운동이여. 우린 죙일 굶고 땅을 파라믄 팠지 선거 운동하는 체질은 아녀."

"인자 그만햐. 좋은 괴기 앞에 먹고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들 땜시 신경쓰다 보믄 지대로 소화나 되겄어?"

오씨가 박태수의 말을 막으며 손을 내젓는다.

"오씨 양반은 개괴기 잡수고 심 쓸일이나 있슈? 우리야 집구석에 들어가서 퍼질러 자는예핀네나 끌어 안을 수 있지만……"

황인술이 나무젓가락으로 이빨 사이에 낀 고기 찌꺼기를 꺼내다 말고 물었다.

"지랄! 비싼 개괴기 먹고 헛심 빼는 거 보담은 백 번 낳지."

"형님 노래나 한 곡 뽑아 봐. 노래하믄 오택수가 양, 학산면에서 안 빠지잖여"

오씨는 방이라고는 달랑 한 칸뿐인 오두막집에 살면서도 면장댁에서나 볼 수 있는 미제 제니스 라디오가 있다. 박태수가 시간만 있으면 라디오를 끼고 사는 오씨의 옆구리를 젓가락으로 쿡 찔렀다.

"땡뀨, 땡큐. 오씨 양반이 좋아하는 울어라 기타 줄아 한번 불러봐유."

"남인수의 울어라 기타 줄아? 좋지, 다들 죙히 하고 잘 들어봐."

오씨는 김춘섭의 말에 망설이지도 않고 일어섰다. 주먹을 말아서 마이크처럼 만들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낯설은 타향 땅에 그날 밤 그 처녀가

웬일인지 나를 나를 못잊게 하네

기타줄에 실은 사랑 뜨내기 사랑

울어라 추억의 나의 기타여……"

오씨의 노래 소리가 바람을 타고 또랑가로 흩어져 갔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또랑에 누운 별들이 한가롭게 떠다니다 바람이 불면 흔적도 없이 물속으로 갈아 앉아 버린다. 박태수가 먼저 손뼉을 치며 오씨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서 김춘섭이 자갈 두 개를 들어서 딱딱딱 박자를 맞춰가며 노래를 불렀다. 윤길동과 황인술도 우리가 언제 이병호 부자를 싸잡아 욕을 했느냐는 듯이 붉게 물든 얼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비봉산 품안에 안겨 있는 모산은 여전히 캄캄한 암흑 속에서 고요히 잠들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