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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시인·희곡작가] 경주 최 부잣집의 마지막 주자 최준이 1884년에 태어났다는 그 자체로도 이미 비극을 떠안고 있는 셈이었다. 그 해는 갑신(甲申)년이었기 때문이다. 즉 갑신정변과 한성조약이 잇달아 터져서 일본의 마수가 나약한 조선왕조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있었기 때문이다.최준이 다섯 살이 되고부터 과거시험에 급제한 독선생을 곁에 두고 글을 배우기 시작하고 훗날 경서와 사기와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했다. 그러나 10세가 되던 해인 1894년 갑오개혁과 동학혁명이 발발하는 거대한 시대의 물결에 나라와 그 집안이 휩쓸려 소용돌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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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16.02.1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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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임찬순 시인·희곡작가] 부자(富者) 3대 못 간다는 속담이 뜻하고자 하는 바는 그것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 도무지 100년을 넘길 수 없다는 말이다.그러나 10대 300년을 가장 튼튼하게 태산처럼 높이 세운 가문이 통칭 경주 최부자 집이다.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부잣집은 이태리 메디치 가문인데 그들도 2000년을 넘기지 못했다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100대 300년을 태산준령처럼 드높였을까.그것은 그 집안이 받들어온 6가지 가훈(家訓) 때문이다.그 속에 들어있는 특별한 경영철학이 땅 깊은 곳에서 하늘까지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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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임찬순 시인·희곡작가
2016.01.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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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시인·희곡작가] 상신록(相臣錄)을 아는가, 조선조 때 내리 열명의 정승을 낸 집안에게만 그들의 행장을 적은 책이다.정말로 한 가문에서 정승을 열명이나 배출한 경우가 있을까?있다.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부터 10대손 이유원까지 영의정을 낸 그들의 집안이다.그 가운데서 백사의 10세손 이조판서 이유승은 슬하에 6형제를 뒀는데, 넷째가 우당 이회영(友黨 李會榮 1867~1932)이고 다섯째가 초대 부통영을 지낸 이시영(李始榮 1869~1953)이다. 옛 로마 제국에서는 전쟁이 터지면 귀족들이 맨 앞장서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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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2016.01.2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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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시인·희곡작가] 한 농부가 밭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며칠 전에 심어 놓은 콩을 산꿩이 쪼아 먹느라고 밭을 마구 파헤쳐 놓았기 때문이다. 농부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서 소리쳤다. "네 이놈, 나한테 잡히면 네놈 모가지를 홱 비틀어서 펄펄 끓는 물에 푹 삶아 먹고 말테다 두고 봐라" 농부는 다음 날, 다시금 씨앗콩을 가져다가 밭에 심고 힘주어 꼭꼭 밟았다. 그리고는 은밀하게 덫을 설치해 두고 입가에 함박웃음을 담았다.또 며칠 후 농부는 다시 밭으로 나갔다. 그런데 밭에 이르자 산꿩이 덫에 걸려 슬피 울고 있었다. 농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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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16.01.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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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시인·희곡작가] 고려 때였다. 지방관아에 아주 특이한 송사가 일어나서 사람들이 온통 들끓었다. 높은 벼슬과 명성을 떨친 학자이면서 재산가였던 윤선의 삼년상을 치루고 며느리가 들어와서 금방 시누이를 고변한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 며느리는 시아버지 생전에 적극 나서 혼약을 정해놓은 터여서 한층 더 화제가 됐다. 그 때문에 재판이 있던 날은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모여들었다. 동헌에는 지방 수령 이방, 형방, 포졸들과 윤선의 장녀,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윤씨 문중 사람들이 긴장 한 채 서 있었다. 재판관인 지방관 수령이 하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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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16.01.0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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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시인·희곡작가] 연분홍 진달래꽃이 활활 산자락을 불태우던 봄날이었다.스승은 먼 한양으로 출타하며 제자들에게 단단히 타일렀다."절대로 말썽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글 읽고 내가 돌아오면 괄목할만한 성적을 보이거라." 하고 많은 분량의 숙제를 내줬다.제자들은 깊이 허리 숙이며 굳게 맹세했다.그러나 한달 후 스승이 돌아와 보니 화양동은 이웃 마을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지체 높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거친 시위를 벌려 아수라장이 됐다. 놀란 스승은 침착하게 사태부터 파악했다. 마을 촌장이 나서서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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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2015.12.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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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시인·희곡작가] 툭하면 우리가 찾아가는 청천 화양동은, 화양구곡의 수려한 자연뿐 아니라 숱한 역사도 가슴에 잔뜩 담고 산다. 그 가운데서 화양서원과 만동묘는 빼놓을 수 없는 두 산봉우리에 속한다. 그 두 산봉우리를 아주 화려하게 거느린 주인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이다.우암은 조선왕조에서 참으로 드높은 깃발을 수도 없이 세운 기록을 남겼다.첫째, 그는 이율곡 김장생에서 이어 받은 기호학파의 서인으로서, 노론의 영수로 조선왕조에 최대한 영향을 던졌다. 그는 먼저 뛰어난 학자로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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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15.12.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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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시인·희곡작가] 목구멍에 풀칠하기 조차 힘든 매우 궁핍한 시대에도 방탕한 자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 목구멍에 엄청난 술을 술술 넘기면서 많은 물의를 일으켜 나라가 나서서 진화 시킨 것이 금주령이다.엄격한 금주령이 내렸던 때 충청도 어느 시골마을에 거칠고 사나운 단속반이 몰래 스며들어 샅샅이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그때 한 처녀가 치마 속에 술병을 감추고 다급하게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맨 처음 목격한 단속반 청년이 동료들의 지원을 받아 함께 의기양양하게 그 집을 덮쳤다.활짝 열린 대문을 썩 들어섰다. 온가족이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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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2015.12.13 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