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몇 달을 기다려도 메시지 답장도 전화도 받지 않으신다, 워낙 바쁘신 분이지만 혹시 과로하여 몸이 불편하지나 않으실까 추석 명절도 곧이어 다가오니 무조건 풀꽃문학관을 가보기로 하였다. 언제나 강을 따라 걷기를 좋아하고 금강을 바라볼 수도 있으니 조금의 미련도 없이 공주로 향한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가보니 세종특별자치시도 많이 달라지고 어느새 금강 표지판이 보인다. 고개를 내밀어 유유한 강물을 본다. 아무 말 없으나 환영하는 듯 물결꽃을 일렁인다. 금강을 가로지르는 그 추억의 다리를 건너 공산성을 뒤로하고 풀꽃문학관 쪽으로 향한다. 과연 문학관은 어떻게 변했을까? 공적인 전화도 받지 않으니 한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오늘 시인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1%의 서운함도 없다' 내 스스로에게 또 한 번 다짐하며 조용히 현관에 들어서본다.
뜻밖에 풀꽃시인 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어찌 이런 천운이! 사실 내 첫 시집에 따듯한 추천사를 써주셨음에도, 코로나로 출간기념을 열지 못해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무조건 다녀갔다는 예의라도 표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귀를 기울여 보니 젊은 청년에게 시에 관한 연구논문을 지도해주시고 계신 것 같았다. 방해가 될까 살금살금 들어서니 마스크를 했어도 얼른 알아보시고 쫌 기다리라 하신다. 청년과의 대화가 잘 된 것 같고 연락도 없이 나타난 나를 보시고 그리 놀라시지도 않아 다행이다.
차를 따라 주시고 건너 책방으로 가시더니 손수 쓰신 책을 한아름 안으로 안고 나오신다. 그냥 건네주시나 했는데 한 권 한 권 표지를 열고 어울리는 색으로 정성스레 사인을 해주신다. 헤아려 보니 모두 8권, 내가 태어나서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책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내가 처음 보는 '어리신 어머니'라는 시집이 눈에 들어온다. 간단히 여쭈어보고 싶은데 저녁 만찬도 마다하시고 자전거 찾으러 가신다며 안녕을 고하신다.
집에 돌아와 한 권 한 권 다시 따듯이 안아본다. 그래도 가장 마음을 끄는 것은 '어리신 어머니'라는 시집이다. 드디어 제 3부 137쪽에서 같은 제목의 시 한편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머니 돌아가시면 가슴속에 / 또 다른 어머니가 태어납니다 // 어머니, 어머니, 살아계실 때 / 잘 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부디 제 맘속에 다시 태어나 /어리신 어머니로 자라주세요(‘어리신 어머니’ 일부)
나는 이 시를 읽고 그만 가슴이 철렁하였다. 시 끝에 2019.2.16인 것을 보니 시인의 어머님이 그즈음 소천하신 것이다. 코로나 와중이라 황망히 어머님을 하늘로 모신 듯하다. 시인은 아무리 기다려도 얼마나 슬프시냐고 내가 묻지 않으니 오늘 이 책을 건네주고 싶었던 것일까?
나의 어머니도 하늘 가신 지 올해 1주기를 맞아 실은 마음이 허전한 중이었다. 진정 신비로운 것은 시인과 나는 교사시절부터 소중한 만남의 인연이 있고, 어머님도 비슷한 시기에 여의고 무엇보다 각자의 어머니를 다시 마음에 모시는 것이 서로 닮아있다는 것이다. 나도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드리지 않고 내 따뜻한 가슴에 묻어드리고 자주 말을 주고받으리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정한 것이기에 큰 슬픔을 가눌 수 있었다.
풀꽃시인이야말로 늘 어리신 어머니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니, 그의 시는 젊고 사랑이 흘러넘칠 것이라는 기대이다. 어머니는 영원의 생명이고 시작이고 마침이 없기에 나의 어머니도 내 가슴속에서 매일 웃으며 사신다. 9월에 무조건 풀꽃문학관을 찾아간 것은 잘한 일이다. 아마도 우리 곁에 함께 자라고 계신 어리신 어머니 덕분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