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마음이 공허할 때면 찬란히 하루를 넘기는 노을을 보러 정북동토성으로 간다. 혹여 날이 흐리더라도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변함없이 맞아준다. 그 뿐 아니다. 토성을 옆으로 끼고 흐르는 그 옛날 동진강이라던 미호천의 물결을 바라보며 말없이 흘러가는 산천을 겸허히 조망한다.
청주 정북동에 위치한 토성은 네모반듯한 형태로 금강의 최대 지류인 미호천의 넓은 평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오랜 풍파를 이겨내며 반듯하게 서 있는 것은 매우 신비스러운데, 부식된 화강암을 부순 마사토와 붉은 흙을 섞어 두께 7∼15㎝씩 판축(版築)하여 지은 조상의 슬기를 흠흠 품어보곤 한다.
계묘 새해가 열리고 어느덧 정월대보름을 맞이한 첫 일요일, 딸과 손녀를 데리고 다섯 가족이 함께 토성을 찾아갔다. 코로나 이후 ‘정월 대보름 축제’가 다시 열린다 하여 무엇보다 연을 만들어보고 날리는 체험마당이 있어 남편이 앞장을 서는 것이 고맙고 기뻤다.
많은 시민들이 모여와 간신히 차를 주차하고 토성에 이르자 처음 보는 대형 연이 토성 위 하늘에서 바람을 타며 신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비행기만 간간이 지나가던 저 하늘에 ‘청주시민 행복기원’이라는 플래카드를 매달고 수십 개의 작은 연을 줄에 매달아 띄우는 ‘사색치마 줄연’이 우리 가족의 눈을 사로 잡았다. 민선 8기 신임 이범석 시장의 환영 축하 인사와 풍물단 공연이 토성을 웃음과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물결로 색색이 출렁인다.
대보름축제를 주관한 ‘충북파라미타청소년협회’에서는 마침 시민 5백명에게 연을 나누어 주고 있어 나도 손녀의 손을 잡고 연 하나를 받아 가슴이 설레었다. 과연 하늘 높이 잘 날릴 수 있을까? 초등학교 시절에 운동장에서 띄워보고 50여년 만에 비로소 날려보는 연! 하늘 높이 꼬리를 흔들며 바람을 타는 연을 보니 정말 신나고 기뻤다. 딸애도 손녀도 처음 날려보는 연이 아주 재미있고 신기한 듯 마음을 달군다. 우리가 받은 연은 공작새 모양으로 가운데 긴꼬리 두 개를 길게 달아느리고 양옆에 짧은 꼬리를 하나씩 달아 균형이 잘 잡힌 연이어서 어른 아이 손쉽게 날릴 수 있어 좋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토성을 찾은 모든 시민들 손에는 연이 하나둘씩 들려 오색 찬연한 줄연을 중심으로 수백 개의 연들이 토성 하늘에 꽃을 피우듯 장관을 이루게 되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오자 연들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꼬리를 모으고 나는 것은 처음 목도한 광경이다. 수많은 무용수들의 몸짓처럼 일사불란하게 바람을 탄다.
연날리기는 대표적 민속놀이로, 보통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날리며, 액을 쫓는 주술적인 의미로 대보름에는 연에 ‘송액영복(送厄迎福)’등의 글을 써서 연실을 끊어 멀리 날려보내기도 한단다.
갑자기 바람이 잦아들자 여기저기 연들이 힘을 잃고 비틀댄다. 땅으로 내려앉을까 손녀가 울음을 토하려 한다. 연의 제작기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바람이 없으면 연은 하늘로 날아다닐 수 없음을 비로소 깨우친다. 바람이 어서 불어오기를 고대하며 하늘을 바라본다. 조상들이 연을 날리는 것은 단지 놀이나 재미에 머물지 않고 하늘과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적 바람을 새해를 맞으면 서 연에 실어 기원한다는 깊은 뜻이 마음을 숙연하게도 한다.
우리 가족도 오랜만에 하늘을 바라보며 정말 특별한 마음으로 연을 날릴 수 있었다. 그들이 심어진 땅에서 한치도 움직일 수 없는 풀과 나무들에게 가끔 건강체조를 시켜주던 그 바람이 연을 창공으로 이끌어 드높이 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람 예술의 극치임에 아직도 마음이 달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