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 시인

생각이 미치면 살며시 그러나 따듯한 웃음을 끊임없이 일게 하는 사람은 내 청춘을 바쳐 사랑한 제자들이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첫 부임지는 기차가 매일 떠나는 역 근처 큰 학교였다. 나의 관심은 여덟 시에 떠나는 기차 소리도 아니었고 멀리 의림지의 푸른 물결도 아니었다. 오로지 내가 담임한 아이들이 어찌하면 공부를 잘할까 그것뿐이었다. 아이들 속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 일요일이 오면 학교 가까이 마련한 자취방으로 몇 명을 불러 특별과외 지도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토요일엔 숙제를 너무 많이 내어 그 분량이 공책 한 권 정도나 되었다니 그래도 선생님 열정이 하도 높으니 학부모들도 항의할 엄두도 못내고 속앓이를 하였다는 것이다. 김00이라는 당시 4학년 첫 제자 중에 지금까지 40여 년을 연락을 주어 미안하면서도 늘 고마운 존재가 있어 내 청춘은 그나마 명맥을 이어오는 것일까?

얼마 전 그 제자의 아들이 교원대를 졸업하고 어려운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드디어 선생님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왔다. 교사의 길이 예전만큼 수월하진 않지만 가르치는 스승이 된 제자의 아들이 아주 자랑스럽고 대견한 것이다. 그런데 세종시 대규모 고교로 첫 발령을 받게 되어 염려가 된다는 것이다. “걱정 말거라. 오히려 친구 같은 선생님을 학생들이 더 좋아할 수도 있단 다. 너 닮아 터프하게 잘 해낼 거야. 아들 딸 잘 키워서 고맙다.”

둘째 이야기도 4학년 때 담임한 소년의 이야기다. 당시 청주 시내 선생님들을 모시고 국어과 모범수업을 할 때 ‘숲속의 대장간’이라는 극화수업을 하게 되었다. 소년은 머리에 장식을 달고 씩씩하고 아름다운 율동으로 수업의 대미를 장식하여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오래 못 만나도 하얀 옷 입은 천사처럼 가끔 그 소년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교단의 시간도 빨리 흘러 내가 어쩌다 학교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는데 고맙게도 결혼하여 다섯 살 된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가깝지도 않은 보은 부임지로 찾아온 것이다.

“민성아! 우리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 되셨어. 인사드려! 축하드립니다.”

내가 그리 잘 가르친 것도 특별히 그 소년을 사랑해준 것도 아니련만 나는 그만 감격하여 몸이 얼어붙고 영화의 한 장면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정년 후 부장 교사 시절부터 써오던 시를 모아 첫 시집을 내었다. 나태주 풀꽃 시인이 추천사도 써 주시고 운이 따라서인지 제2회 ‘충북시인상’을 받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그 제자의 가족을 만나고 싶어서 연락했더니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수상소감 할 때 여러 시인들에게 미담으로 소개하고 인사를 드리니 내가 받은 상보다 더 자랑스런 제자의 모습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내 이웃 어머니의 교육적인 삶이다. 그 어머닌 살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헤어디자이너로 열심히 일하며 딸 아들 모두 네 자녀나 나아 건강하고 능력 있는 대한민국 국민을 키워내고 있으니 얼마나 장한가! 올 3월 언니 오빠가 졸업한 같은 학교에 막내가 입학, 네 자녀 모두 한 학교 동창생이 되는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만날 때마다 ‘자식 키우느라 힘들어요’ 소리 한 번 안 하고 학교 담임 선생님을 존중하며, 자녀들의 적성을 고려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걸 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어머니가 인생의 첫 교사라 하더니 부모된 사람마다 그렇게 자녀를 키우면 사회도 건강해질 텐데......

벌써 3월도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새 담임 새 친구 만난 모든 아이들이 서로 존중하며 봄꽃처럼 활짝 피어나기를! 노랑나비 같은 산수유꽃, 생강나무꽃이 아이들 곁에서 응원하고 있다. 어른들부터 희망찬 어여쁜 꽃이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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