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작년 이맘때쯤 남편이 모란을 심은 화분을 들고 왔다. 증평 다녀오는 길에 논 옆에 새로 들어선 꽃집에 들러 발견한 것이란다. ‘모란 모란꽃’ 하면서 봄이 되면 안절부절하는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뜻밖의 선물에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모란은 오십 센티 정도의 가느다란 줄기에 오직 한 송이 꽃봉오리를 달고 있었다. 과연 살던 곳을 떠나 우리 집 베란다에서 꽃봉오리를 열고 꽃을 피울까 하루 이틀 기다리며 아침이면 제일 먼저 문을 열고 살펴보았다. 밤마다 달빛도 받았는지 드디어 꽃을 피웠을 때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꽃송이가 예상외로 커서 손바닥만하게 크고 꽃잎은 연한 핑크빛으로 특유의 향기를 품어내는 것이다. 틈만 나면 그 향내를 맡으며 온갖 시름을 잊었다.어디서 이사 온 천사인지 싶게 우리 집의 분위기를 바꾸어 주어 고맙기도 하였다. 꽃 한 송이의 위력이 넓고 깊음을 실감하며 꽃이 지는 아쉬움 속에서 긴 여름이 지나갔다.

바닥에 온기가 돌지 않는 베란다는 겨울 추위가 맵다. 그 모란이 가을 지나 겨울이 가까워 오자 그나마 잎도 지고 앙상한 줄기 하나로 겨울을 나게 되었다. 혹시 동해를 입을까 걱정하는데 남편이 ‘괜찮을 거라’하여 흰 눈 내리는 날도 베란다에 그냥 두고 삶을 살았다.

정작 올해 새봄이오니 그 모란을 잘 돌보지 않아 미안하고 혹시 얼었나 노심초사하는데, 어느 날 새싹을 뾰족하니 내미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던 남편도 달려와 가는 줄기를 살펴보고 살짝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이다

“사랑해 모란! 네가 살아있었구나. 정말 장하구나”

작은 싹에 대고 속삭이며 어루만져 주었다. 꽃은 고사하고라도 살아있는 게 놀랍고 그 생명의 신비함에 그만 고개가 숙어지는 것이다. 다행한 것은 봄기운이 짙어지자 맨 위 줄기 끝에 조그만 꽃봉오리도 보이는 것이다.

“자기야! 모란 꽃봉오리가 맺혔어요. 빨리 와 보셔요. 어떻게 이런 기적이”

그런데 나의 기우는 겨울이 몹시 매서웠기에 ‘저 봉오리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그냥 말라버릴 수도 있는데.....’

그러나 나의 예상을 뒤로하고 며칠 후에 꽃잎을 열고 드디어 꽃을 활짝 피워낸 것이다. 겨울을 넘느라 조금 힘들었는지 작년 꽃보다 분홍빛이 다소 여리고 꽃잎도 얇은 듯하지만 그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극치의 아름다움과 향내 또한 은은하였다.

그렇게 모란꽃이 피어난 다음 날 예정보다 이틀 당겨 병원에 간 딸애가 두 시간 진통 끝에 아가를 순산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모란은 아가를 기다리며 겨울을 이겨냈고 드디어 한 송이 꽃을 피워 새아가를 환영해 준 것일까?

아가도 기적인 것은 작년에 인공수정으로 첫 번째 시도한 것이 착상이 잘 되어 딸 내외가 태명을 ‘로또’라고 지을 만큼 기막힌 탄생인 것이다. 모란이 우리 집에 온 것도 거의 열 달, 아가도 새 생명으로 딸애의 비좁은 뱃속에서 열 달을 견디어내고 드디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모란은 예로부터 부귀와 명예를 나타내 부귀화(富貴花)로 불리며 사람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아온 터이다. 새아가도 착하고 바르게 자라 여러 사람 속에서 꽃피고 사랑받는 존재가 될 것이다

2023 계묘년 가장 큰 선물은 새로 핀 모란꽃과 새아가이다. 이제 모란의 초록잎은 더욱 녹색으로 커가고 아가도 목을 가누며 살짝 웃기도 한다. 이 세상에 없던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 그 이상의 축복과 신비는 없다. 손자 하준 아가에게 박수를 전하며 나의 씩씩했던 모란에게도 따듯한 사랑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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