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 교활한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 쓰임을 다해 효용가치가 없어진 신하를 주군이 내친다는 뜻, 줄여서 토사구팽이라 한다.
‘토사구팽’은 한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를 평정한 한신이 주군으로부터 배신 당한 이야기로,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온다.
한고조 유방이 초패왕(楚霸王) 항우(項羽)를 꺾고 천하를 차지한 데에는 한신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그러나 일등공신인 한신을 바라보는 유방의 마음은 언제 그가 모반을 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천하를 통일했으니 유방의 그 다음 행보는 정적이 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숙청이었다.
한신은 유방으로부터 버림을 받으며 통탄하며 말한다.
“과연 사람들의 말이 맞구나.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좋은 사냥개를 삶고, 높이 나는 새가 사라지면 좋은 활도 감춰지며, 적국이 패망하면 지략이 뛰어난 신하도 망한다더니, 이제 천하가 평정됐으니 내가 삶아지는 것도 당연하겠구나.(果若人言. 狡兎死良狗烹, 高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
‘역린’ 건드린 ‘푸틴의 요리사’
결은 약간 다르지만 푸틴과 프리고진의 경우도 엇비슷했다.
한때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며 갖은 혜택을 다 누리고 용병을 거느린 채 국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더니, 급기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의 주구(走狗)가 돼 바흐무트 전선에서 바그너그룹을 앞세워 싸웠다. 치열한 격전장인 바흐무트는 푸틴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같았다. 그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프리고진은 죽기살기로 싸웠다.
그런데 프리고진에겐 눈엣가시 같은, 아니 너무나 혐오스러운 인물 둘이 있었다. 쇼이구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전장에 수 많은 젊은이들을 뚜렷한 전략과 전술도 없이 죽음으로 몰아세운 그들을, 더욱이 푸틴의 눈과 귀를 가린 채 거짓 보고만을 일삼는 무능하고 교활한 그들을 프리고진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들과 예리한 각을 세워왔던 프리고진은 결국 행동에 나섰는데, 그것이 푸틴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정의의 행진’이 그것이다.
프리고진은 지난 6월 24일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던 바그너 용병들을 이끌고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는 반란을 일으키며 그 이름을 ‘정의의 행진’이라 붙였다.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를 점령하고 모스크바 200㎞ 앞까지 도달했으나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하루 만에 반란을 멈췄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반란이 쿠데타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프리고진이 생각했던 건 반역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가 반역을 꿈꾸었다면 모스크바로 향하던 무력 행진이 ‘1일 천하’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쇼이구와 게라시모프를 제거하려는 게 목적이었을 것이다.
아주 나쁜 놈, 더 나쁜 놈
그가 모스크바를 향한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면 세계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푸틴에 의해 제거됐다. ‘스트롱맨’ 이미지에 금이 간 푸틴은 자신의 위상에 도전하는 꼴이 된 프리고진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프리고진을 암살한 푸틴의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그르다 하기도 그렇다. 프리고진의 사망을 슬퍼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아주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에게 제거됐을 뿐이다. 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