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장·아동문학가

“죄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 얼굴에 손톱자국 내며 / 사는 일은 / 더 이상 되풀이 말자… / 오래된 기억으로 ‘함께 살아가는 땅’(이어령)의 어렴풋한 첫 연이다. 망측하고 탈 많던 22대 총선, 민심 폭발 자국은 컸다. 빛·정의, 어둠·불의가 뒤엉켜 당선 확정을 받고도 긴가민가한 사람들까지 유권자와 '4년짜리 기간제' 계약 성사를 축하한다. 부리나케 날리던 전화조차 꺼버린 낙선자 회한은 어떤 위로도 모자랄 일이다. 선거운동기간 비전 없는 ‘상투적 포퓰리즘’과 ‘심판(조·이 : 정권)’ 에 메스꺼웠다. ‘이종섭·황상무’를 둘러싼 격앙된 여권(여당 후보자 포함)의 읍소에도 대통령은 ‘문제없다’며 미적대다가 민심을 꺾었고 ‘의대 증원 2000명’ 외통수로 울화를 증폭시켰다. 요컨대 당정 간 깨진 협업, 냉혹한 자업자득 맞다.

◇ 위험한 거래

선거 유세 중 "정치를 개 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저간 사정을 모른 바 아니다. 얼마나 속 터졌으면 “염치없는 줄 알지만 딱 한 번 더 믿어 달라”며 총대를 맸을까. 궁금증은 풀렸으나 엎질러진 물이다. 여야 모두 소통과 공감이 사라졌다. 소위 정치 원로들마저 멘토는커녕 오로지 여태껏 ‘갈라지기’ 꼼수로 누려온 진상 아녔나. 정치 신인도 매한가지였다. 한쪽에서 폭로하면 부풀려 할퀴는 왜곡, 공식처럼 굳어져 누굴 콕 집어 탓할 수 없다. 여북하여 "기권도 정당한 의사표시”라며 투표를 외면했겠는가. 불신으로 막혀서다. 어디 그 뿐인가.

“비례대표 투표용지에 기호 1~2번은 왜 없느냐”며 따져 묻는 투표자가 꽤 많았다고 들린다. ‘3, 4, 9, 29’ 덩달아 수난을 겪었다. 충북의 경우 국민의힘 3 민주 5, 그 가운데 청주는 전부 민주당이 싹쓸이 했다. 이제 철철 넘쳤던 고소·고발 그리고 선거 사범들 줄 소환 차례다. 대법원 확정 판결은 의원임기 끝날 때 쯤 나올 터, 오금 저려 주눅들 리 만무하다. 기소(검찰)를 눈 부라리고 연실 판사·법무장관 불러 죄 값 흥정 시나리오에 거북한 비례대표 승계 거래도 꼬치꼬치 묻기 싫다.

◇ ‘머슴’의 의지

민심은 준엄하다. 당장 대통령실·여당 변화가 발등의 불이다. 아무튼 국민 통증부터 추스르려면 사람·정책 징비부터 서둘러야 한다. 그 다음 초당적인 소통인데 곧바로 ‘잠룡 혈투’에 심란하겠다. “국회의원은 위민보다 100여 특권이 먼저”라는 뼈아픈 정치 평론을 동의하고 싶지 않다. 설마 ‘불체포 특권 포기, 무노동·무임금, 면책특권 악용 반대’를 괴담이었다고 적당히 얼버무릴 텐가. 의석수 과반 훌쩍 넘게 범야권에 허한 걸로 봐서 정부 견제도 식은 죽 먹기니 지난 국회보다 훨씬 바람 잘 날 없지 않겠나. “정치는 근본적으로 적과 손잡는 것이고, 승리한 순간 겸손해지는 것이다.”(중앙일보 2024. 4. 10.자 8면) 좋은 정치로 상군이 되느냐 프레임에 갇혀 “무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김수열 시 ‘고부’중에서)로 날 새다 지선·대선을 망칠 얼간이가 되느냐 22대 의정 과제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자. 정의란 칼보다 갈등과 모순까지 품는 힘이다. 순금 의자에 올려놔도 다시 연못에 뛰어드는 개구리처럼 국민 눈높이로 생산적인 편곡(編曲)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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