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독일의 한스 카로사(Hans Carossa)는 ‘인생은 만남이다’라고 정의했다. 그의 말처럼 인생이란 곧 만남의 연속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대자연과의 만남은 생의 깊이와 폭을 무한히 넓게 하고 말 없는 자연과의 만남에서 겸손과 호연지기 나아가 수많은 경이로움과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 사람과의 만남이 삶의 시작이자 종결을 이어주리라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나에게 있어 최고의 만남은 잉태하여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과의 만남이다. 아버지는 책과 시(詩)를 내 손에 들려주셨고 어머니는 사랑의 숭고함을 몸소 보여주신 내겐 성녀와 같은 존재이다. 때로 삶이 어렵더라도 두 분의 가르침과 사랑으로 다 덮고 그리움에 살고 있으니 그 만남은 깊고도 넓은 바다와 같다.

내가 성장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수많은 제자들과 선배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어린이들에게 ‘바른 맘 고운 꿈’을 길러주자는 충북글짓기지도회에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만나 교단을 지켜오게 된 것은 과연 위대한 만남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이 만남은 단순한 친목이 아니라 해마다 어린이날과 한글날을 기하여 동시화전과 기념 백일장을 충북 도내 학생들을 위하여 열어주는 당시에는 흔치 않은 아름다운 봉사 조직이었던 것이다. 나도 그 취지에 동참하여 교사 시절부터 빨간 어린이날을 한 번도 가족과 지내지 못했지만 후회해본 적은 없다.

그 시절 아이들도 자라서 어른이 되고 선배님들께서도 정년을 맞아 교단을 떠나셨지만 충북글짓기지도회를 창립한 이름하여 ‘한모임’은 계속 이어져 선배님들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음이 큰 위로가 되었다. 갑자기 닥쳐온 코로나로 일 년에 한 번 가던 인문학 여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간에 귀천한 선배님도 몇 분이 되시고 병환으로 모임에 못 오시는 분도 생기자 더 늙기 전에 여행을 가기로 15인승 작은 버스를 빌려 떠나게 되었다.

대부분 회원이 고령이시고 오가는 중에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은근 걱정이 되기도 한 게 사실이다. 인문학 코스는 당진의 필경사 답사와 태안 세계튤립꽃박람회를 다녀오는 것으로 정했다.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만 알고 있던 터에 심훈기념관에서 훌륭한 또 한 분의 애국인이 있어 감동이었다. 심훈은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로 조국의 독립을 절절히 기다리며 심금을 울려주고 있다.

그날이 오면/그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두개골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하략)

심훈이 그토록 바라던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고 36세의 젊은 나이에 귀천한 것은 역사의 아픔이라고 선배님들 모두 안타까워하셨다.

튤립꽃박람회에서 아롱다롱 찬란한 꽃들을 만나고 청주로 돌아오는 길에 15인승 버스안은 꽃 같은 젊은 시절을 보내신 선배님들의 이야기로 활기가 넘쳐났다. 그 중에서도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j 선배님의 승진에 얽힌 피나는 노력과 운이 닿지 않아 고뇌하신 이야기는 공감을 얻는 압권이었고, s 선배님의 전문직에서 힘겹게 버티어내신 그날들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비화여서 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것이다. o 선배님 또한 험난한 길을 지나 학교장으로 승진하였는데 그간 충북교육을 위해 고생 많았다고 첫 임지에 깜짝 먼저 나타나신 k 교육감님의 배려에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 등 모두가 쉽지 않은 교단의 길을 걸어오신 선배들이 새삼 존경스럽고 거룩한 삶이었음을 알게된 것이다. 푸른 5월을 맞아 사람을 다시 발견하는 축복이 걸어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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