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장·아동문학가
조롱박 넝쿨이 줄타기 한다. / 여름내 기어오른 것도 모자라 /초가을까지 아래 한번 안 쳐다본다. / 어쩌려나 /고개도 날마다 따라 올라 / 더 젖히기 힘들 때 /하나 둘, 모양 빚어 / 내려오기 연습이다. / 그래, 옹기종기 조롱박이라 작명했다지./ (오병익, 조롱박)
40년 전, 필자가 KBS청주방송 어린이 문예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스튜디오를 들어설 적마다 건물 정면 '만남의 광장'에 빽빽하게 나붙은 애끓는 절규가 지금도 또렷하다.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콧등이 시큰했고 전 국민을 울렸다. 글씨가 바라면 혹시 그냥 지나칠까봐 한주일이 멀다하고 새로 써 붙인 것도 있고 아예 몇 달을 거르지 않고 꼬박 광장을 지키는 조롱박 넝쿨 닮은 할아버지도 봤다. 행여 실오라기보다 못한 기약 뒤엔 꼭 만나서 얼싸 안아야할 한이 여러 겹 서렸을 터,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진들 무슨 상관일까. 모든 세대, 모든 국민이 꿈인 듯 생시인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에 하얀 밤으로 지샜다. 얼굴 생김새도 몰랐는데, 눈을 딱 마주친 순간 ‘내 형이구나’ 알아차렸단다. 잃어버린 30년의 서프라이즈(surprise)였다.
◇ 안보의 묵시록
2010년 3월 6일 백령도해상에서 우리 해군 천안함이 피격돼 두 동강 난 채 침몰된 사건일지가 떠오른다. 772함 수병 마흔 여섯 아들, 물살 센 바다 속에서 조국의 별이 돼 잠들었으나 정황 설명조차 ‘이랬다 저랬다’ 우스꽝스러운 안보의 묵시록으로 읽혔다. 한 때,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로 휴전선을 넘나든 기차소리를 냈고 금강산 육로관광까지 열렸던 감개도 잠깐 툭하면 시비가 붙는다. 이번엔 북한이 날려 보낸 ‘오물 풍선’에서다. “화학물질 주입 순간 생화학 무기로 발전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국방 전문가들 경고다. 두렵고 고통스럽다.
“겁 없는 하수가 판을 뒤집기도 하지만 고수는 자신과 싸운다.” 바둑으로 치면 중요한 귀를 놔두고 보통 중앙 선점부터 노린다. 여기서 ‘지피지기’란 결국 전쟁 억지에 목표를 둔다. 그렇다고 허둥대거나 뒷북치기에 급하다 보면 더 중한 걸 놓친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서해 NLL 일대 GPS 교란 신호가 탐지됐고 서해5도 인근 해상의 어구를 찾는 데 혼선을 빚은 어민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우리나라는 IT 인프라 최상위권 국가다. 하지만 북한 무인기 떼가 서울 상공까지 휘젓는 등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북한 도발 정보 분석 대응 시스템)’ 초동대응엔 자주 핑계로 넘쳤다.
◇ 지성=감천
이산가족 신청자 13만3676명 가운데 사망자 9만여 명을 빼면 고령자 4만2000명쯤은 73년째 생이별 중이다. ‘한반도 통일·안보’ 우리 심장과 같은 뜨거운 레시피다. 하루라도 빨리 평화·공존 물꼬를 트길 바라지만 우리 곁에서 시나브로 묻히는 영상 외에 딱히 진전된 게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먼저 설칠 수 없는 일, 분단 세월이 얼마였나. 서로의 대사, 서로의 정서, 서로의 믿음까지 다르니 당연하다. ‘지성=감천’ 이다. 함께 변해야 한다. ‘욱하지 말고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생각할 여유’를 갖자. 긴 호흡 뒤 남북이 종종 만나 겨자씨만큼이라도 속마음과 느낌을 트는 ‘70년 포옹’ 동반 프로젝트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