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인생은 만남이다. 만남을 통해 인생의 길이 크게 달라지고 빛을 얻게도 된다. 아직 한 공간에서 존재하는 사람이나 자연과의 만남은 곧 삶의 거룩한 발걸음과 직결된다. 그런데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사람과의 만남도 무한 아름답고 깨달음이 있다.
얼마 전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문학단체에서 문학기행을 다녀왔는데 남한강을 품고 있는 여주 일원을 가보는 것이다. 남한강변에 자리한 신륵사와 강에 새긴 역사를 조명해보는 여주박물관도 의미가 있지만 세종대왕을 모신 영릉 답사 참배가 있어 여러 일정을 미뤄두고 참여하였다. 여주에 도착 제일 먼저 영릉으로 향하는데 진입로가 매우 길고 그 일대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일행 30명 중에 몇 번 다녀간 사람도 있으나 나는 어쩌다 첫 참배여서 부끄럽기도 하면서 뜻깊은 만남이 기대되는 것이다.
1408년부터 1966년까지 5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조선왕릉은 왕실의 권위를 다지는 한편 선조의 넋을 사기(邪氣)로부터 보호하는 차원에서 뛰어난 자연경관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보통 남쪽에 물이 있고 뒤로는 언덕에 의해 보호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이며, 멀리 산들로 둘러싸인 이상적인 자리를 선택해 마련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영릉은 남한에 있는 조선왕릉 40기 중 최초의 합장릉으로 의미가 크다. 늘 애민에 기초한 통치철학에 백성의 노고를 줄이려는 세종의 배려로 먼저 귀천한 소헌왕후를 모실 때 결정한 것이란다.
여러 기대를 안고 해설사를 따라 걷다 보니 예의 홍살문이 나타나고 멀리 작고 아담한 정자각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정자각은 능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중심 건물로 그 모양이 ‘丁’자와 같아 ‘정자각(丁字閣)’이라고 부르며 봉분 아래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정자각 좌우로는 수라간과 수복방이 대칭으로 놓여 정자각 제례에 필요한 간단한 준비를 할 수 있단다.
이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정자각에 이르는 길에 박석을 깔고 향로(香路)와 어로(御路)가 구분되어 있는 점이다. 향로는 신이 드나들거나 향을 모시고 들어갈 때의 길이고, 어로는 임금이 걷는 길이다. 향로를 중앙에 두고 어로를 향로 곁에 조금 낮게 설치해 현세의 임금도 머리를 숙여야 하는 신성성을 안고 있는 길이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제향공간’ 뒤로 봉분을 중심으로 ‘능침공간’이 거룩하게 나타난다. 드디어 내 생애 처음 세종대왕님 가까이 서다니 가슴이 두근댄다. 봉분을 좌우로 호위하며 서 있는 ‘문석인’(文石人), ‘무석인’(武石人)은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고, 필자가 가장 감동인 것은 봉분 앞에 두 개의 나란한 돌상을 본 것이다. 직육면체 형태의 석상(石床)으로, ‘영혼이 노는 돌’이라 하니 그 이름이 혼유석이다. 난생처음 접하는 조상의 슬기! 혼이 무덤을 나와 쉴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다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영릉에는 두 개가 나란하여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임을 알 수 있고, 두 영혼을 똑같이 배려한 것이 놀랍다.
여주시에는 세종대왕면이 있고 경강선의 전철역으로 세종대왕릉역이 2016년에 세워져 세종인문도시로 우뚝 서 있다. 과연 자랑스럽고 세종대왕은 사후에도 우리 곁에 살아계심을 이번 문학기행을 통해 감동으로 안아본다.
매년 5월 15일에 세종대왕릉 정자각 일원에서 ‘세종대왕탄신 숭모제전’을 봉행한다니 내년엔 세종대왕릉역을 이용 꼭 참석하리란 약속을 능침공간에서 해본다. 살아계실 때 오직 백성을 사랑한 대왕님! 우리 역사가 새삼 소중하고 세종의 강물은 남한강을 넘어 한글을 태우고 세계의 바다로 흐르고 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