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장·아동문학가

주름이 굵어지고 괜한 소리가 늘고 / 포개진 약 봉지에 세월을 맡긴다. /웃음이 줄고 몇 달 건너 하나 둘, '삭제' 키를 / 떠난 이름들로 가벼워지는 전화기 / 이젠 끝물이다 / 머잖아 내가 지워질 차례다./ 필자의 시 ‘삭제 키(delete)’다.

에세이집 ‘초보노인입니다’를 읽었다. 초보운전은 자주 듣고 봤어도 ‘초보노인’ 용어자체가 눈길을 당겼다. 부부 중 한쪽 초보노인이었지만 황당한 실수에 웃음이 고였다. 노인으로 살아가는 데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줄거리였다. 인류역사상 초유의 장수시대, 어쩌다 고령화, 구슬픈 뻐꾸기 노래 못잖다. 정년·노후에 대한 테크도 널브러졌다. 은퇴 전 인생행로(배우고 직업 갖고 걸어가는 길과 목적지)는 판이 했다. 하지만 영광에서 탈출하고 나면 거기서 거기처럼 비슷한 게 신기할 만큼 서로를 닮아간다. “10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200년도 가능하다 100세 오류 전해라” 섣부른 노랫말일까?

◇ 인생 경작 최적기

사전적 의미로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질 사람’인데, 국가 서열이 내로라할 자리서 존경받던 분들까지 결코 만만할 수 없는 ‘와르르’ 품격 무너지는 파장을 불렀다. 꽤 연세든 사람 중에도 대화가 딸린다 느끼면 다짜고짜 ‘어린 게 뭘 알기나 하냐’며 말을 끊고 자신은 수용하길 거부한 채 좌충우돌 조소(嘲笑)거리를 만든다. 분명 겁 없는 꼰대다.

인간 수명이 60~70세 땐 그러려니 넘어갔으나 전체 20~40%에 육박한 노년 인구 시대, 사회·국가적 갈등·리스크(risk) 요소다. 정신적 노쇠(老衰)로 먼저 늙는 것부터 문제다. 인생 늘그막의 목표는 완성이다. 물질보다 정신을, 몸보다 마음의 평화를, 소유 집착에서의 지혜가 필요하다. 연봉은 얼마인지, 무슨 직함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분야에서 무슨 일 하는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주어진 일 지시하는 사람도 또 지시 할 사람도 없다. 싸워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가 아니라, 뿌린 씨앗만큼 거두는 정직한 논밭처럼 여유롭게 인생을 경작할 최적기다.

◇ 숨바꼭질 노권(老權)

절친(絶親)을 잃는 것처럼 허전한 게 또 있을까. 5~60년 지기들이 하나 둘 먼저 이승을 등지는 걸 보면서 소스라친다. 친구에 의해 맑아지고 제자리를 찾은 일 얼마나 많았던가? 백세시대라지만 칠순 중턱도 오르기도 전, 이승과 저승으로 헤어져 결국 전화번호마저 삭제하게 된다. 세상 영원한 건 없다. 나이 들수록 꼿꼿한 노인, ‘주제파악’과 ‘분수’를 아는 일까지 국민 엄마 배우 김혜자의 데뷔 60년 인생 고백록(생에 감사해)에서 그에게 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모든 삶’이란다. 원 없이 몰입한다는 증거겠다. 언젠가 국회의원 출마를 부추겼으나 단칼에 거절했다며 “정치보다 연기를 통하여 줄 수 있는 희망이다.” (조선일보 2022. 12. 26. 자 참고)

이밖에도 30년 가까이 아프리카 난민을 위해 파일 넓히기 바빴단다. 국민 배우 국민 엄마를 넘어 월드 마더 플러스 글로벌 어른답다. 편견과 세대 간 벽을 낮춰 미래 세대 공감을 이끌 노년(초·중·고령) 품격이 괜찮아야 살아있는 사회다. 노권(老權)의 숨바꼭질, 변화 없으면 생존도 없다. 지레 푸념하지 말라. 어른공부가 먼저임에 동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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