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 특히 사회 경제적인 어려움들이 많았다. 이런 힘든 시기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우리 모두에게 참된 소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어째서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소망이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 제국에서 실시한 인구조사 때문에 요셉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야했다. 그리고 때마침 출산이 가까이 온 마리아가 산통을 느끼자 급히 강보로 쌓아 아이를 구유에 뉘었다. 그때 하늘의 천사들은 깊은 밤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린다.
결국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으로 알려진 메시아의 탄생은 주변 목자들과 저 멀리 동방에서 온 몇몇 박사들의 방문 외에는 아주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왜일까? 세상은 아직 아기 예수의 탄생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민족을 통치하고 있던 분봉왕 헤롯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이 곧 탄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영유아들을 모조리 죽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다. 요셉과 마리아는 꿈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이러한 헤롯의 만행을 알리며 안전해질 때까지 애굽으로 피하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성경이 전하고 있는 예수님 탄생에 관한 이런 이야기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성탄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늘의 영광과 세상의 평화로 상징되지만 실제 아기 예수가 태어나던 그 순간의 풍경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아이러니는 단지 예수님의 탄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진정한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사람들, 특히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으로 대표되는 당시 유대민족의 지도층으로부터는 심각한 비난과 멸시를 받았다. 결국 예수님께서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렸다는 소문이 퍼지자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더 이상 나사렛 예수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다진다.
유대 대제사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님을 모함하여 로마의 법정에 넘긴다. 그가 유대 사람들을 선동하여 로마에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게 되자 어제까지만 해도 그 분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예수님을 배신하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예수는 사람들의 비난과 멸시 속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럼 우리는 왜 이러한 삶을 산 한 인간의 탄생을 기억하며 기념하고 있는가?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성탄절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가? 이는 예수님의 삶이 누구나 기념할 만큼 멋지거나 화려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분의 삶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조롱을 받았을 뿐 아니라 마지막에는 비참한 죽음에까지 이른 그런 삶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삶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그분에 세상에 전한 메시지를 기억하기 때문에 오늘날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분은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세상을 향해 ‘용서와 사랑’을 핵심으로 한 메시지로 세상 모두에게, 특히 가난하고 병든 자와 같이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된 자들에게까지 삶의 소망을 전했기 때문인 것이다.
한 번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왜 당신은 세리나 죄인과 같이 낮고 천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신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
예수님의 말씀은 그가 바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자 하늘의 천사가 베들레헴 목자에게 찾아와서 이 동네에 너희를 위한 구주 곧 그리스도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곧이어 수많은 천사들이 목소리를 높여 이렇게 찬송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예수님의 탄생은 하늘의 영광의 임재이다. 그 분의 임재로 말미암아 이 땅이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온 세상 사람들이 매 성탄절마다 서로 기뻐하며 축하해 주는 이유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성탄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성탄절만큼은 세상 누구라 할지라도 마음껏 즐기며 행복해 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