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사람들은 ‘아는 것이 곧 힘’이라고 말한다. 많은 지식이 있고 많은 정보가 있으면 그 자체로 힘이 되고 능력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각자가 속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에 비하여 훨씬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법적인 분쟁이 생겼을 때 법조원과 일반인이 서로 소송을 한다면 누가 더 유리하겠는가? 경제 전문가와 일반인이 함께 투자를 한다면 누가 더 유리하겠는가? 이처럼 ‘아는 것’ 즉 ‘지식’은 단순히 정보의 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정보는 하나의 힘이며 능력인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전 7:16) 지혜가 지나치면 스스로 패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째서 많이 안다고 해서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는가? 이 세상에 지나친 지혜가 있을 수 있는가?
요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선지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요나는 이 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니느웨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자 함임을 눈치챈다. 어떻게 요나는 심판의 메시지을 받고서도 하나님의 뜻이 심판이 아니라 용서인 것을 알았을까?
요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나는 하나님이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분’(욘 4:2)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유는 정말 그들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를 듣고서 죄를 회개하도록 하여 그들을 용서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어기고 니느웨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탄다.
그런데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난다. 풍랑이 일어 배가 흔들리자 사람들은 당황한다. 요나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을 어긴 자신 때문이라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한다. 다시스까지 가지도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고 여긴 것이다. 어째든 요나의 목적은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니 자신이 죽게 되면 결국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백성들을 심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계산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물에 빠진 요나에게 큰 물고기를 보내 그를 삼키도록 하신다. 3일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있던 요나는 결국 니느웨와 멀지 않은 바닷가에 토해진다. 요나는 어쩔 수 없이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선포하는데 그 말씀은 아주 간략한 심판의 메세지였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망한다’
말씀이 선포되자 요나의 예상과 같이 니느웨 주민들은 즉시 베옷을 입고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뜻을 돌이켜 니느웨를 용서하신다.
요나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많은 지식, 많은 지혜가 아니라 지나친 지식이었다. 왜 그런가? 요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성품을 자기 뜻대로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바를 이루려고 했기 때문이다.
요나는 니느웨의 온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다 멸망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즉 요나는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지식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니느웨 온 백성들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던 그 순간에 오직 한 사람, 요나만큼은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지나친 지식과 지혜는 요나에게 힘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망하게 하는 걸림이 되고 말았다. 지나친 지식이란 너무 많은 양의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통해 잘못된 일을 이루려고 하는 이들을 꼬집는 말이다.
우리말 ‘지혜롭다’는 고대 히브리어에서 ‘아룸’이라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아룸’은 ‘교활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지혜자의 지혜도 ‘아룸’이지만 인간을 속인 뱀의 교활함도 ‘아룸’이다. 둘 모두 지혜가 있지만 한 쪽은 이 지혜를 통해 옳은 일, 좋은 일을 행하지만 다른 한 쪽은 사학한 일을 행하기에 ‘교활함’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어도 그 방향과 목적이 어긋나면 결국 이는 지나친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 지나침은 그를 반드시 스스로 멸망하는 길로 이끄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서인 잠언은 더 많은 지혜가 아닌 ‘겸손’을 더욱 강조한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8:12) 지나친 지식은 교만을 가져오지만 참된 지혜는 겸손과 존귀를 선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