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여러 혼란 속에 새해가 왔다. 한동안 미루어 오던 해외여행을 호주로 결정하니 다소 안정이 되었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도 보고 싶지만 혹시 매년 1월 개최되는 세계 4대 그랜드 슬램 테니스 대회인 호주 오픈을 가보고 싶은 선택이었다. 시드니에 가서 이곳저곳 명소를 다니는데 내 눈을 사로잡은 나무가 있어 물어보니 유칼립투스라는 것인데 얼마나 줄기 속이 강한지 전봇대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이 나무는 호주가 원산지이며 700여 종이나 자라고 있다니 신비할 정도이다. 줄기는 매끄럽고 청회색을 띤 흰색이며 잎은 회녹색이다. 크게 자라는 종은 100m까지 자라는데 인류가 확인한 가장 높은 나무가 132m나 된다고 한다.
이틀간의 시드니 투어를 마치고 멜버른으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멜버른의 주요 일정인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달려가서 바다에 서 있는 12사도 괴암 바위를 만나는 것이다. 버스로 3시간 길을 달리는데도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유칼립투스 나무 들이다. 어떤 나무는 기둥이 두 아름이나 넘어 약간 무섭기도 한데, 유칼립투스의 꽃말은 ‘추억’이란다. 어쩌면 8년만의 해외여행은 이 나무로 인해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움 속에 깃들 것이다. 버스는 유칼립투스 숲을 뚫고 달려간다. 창밖으로 방목하는 검은 소, 젖소, 작은 양들이 한가롭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243km의 길이로 남동부 해안가를 따라 이어져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사망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전쟁 기념물이라고 해박한 가이드가 들려주는데 인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산화한 사람들이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석회암 바위가 오랜 시간 동안 파도와 바람에 침식되어 만들어진 해안 절벽과 12사도의 바위가 있는 바닷가에 이르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경을 읽던 룸메이트도 보란 듯 감탄하고 만끽한다. 자연이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짙푸른 남태평양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다시 2시간을 달려 멜버른 시내로 들어왔다. 이제 꿈에도 그리던 호주 오픈을 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일정에는 호주오픈 관람이 들어있지 않아 염려인데 “우리에게 정해진 호텔이 대회 장소인 멜버른 파크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걸어서도 갈 수 있다”고 가이드가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천우신조 선물인가!
석식 후 호텔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멜버른 파크로 향한다. 티켓이 있어야 입장하는데 5시 이후부터는 입장료 반이 줄어 우리내외는 한화 5만원 정도로 기아가 협찬하는 KN Arena로 입장할 수가 있었다. 여자 선수 경기가 진행될 예정으로 관중들이 북적이고 있다. 그토록 고대하던 호주 오픈을 현장에서 보다니 꿈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간신히 빈 의자를 찾아 젊은 청년 옆에 나란히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데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니 잘 알려준다. 영어로 서로 소통하는데 그는 멜버른에서 태어난 화교로 결혼도 하였다한다. 마침 토일럿 브레이크가 있어 짝꿍이 나가 오렌지 주스와 빵류를 사들고 왔다. 두 세트를 사서 화교 젊은이에게 들려주니 깜짝 놀라며 진심에서 나오는 ‘감사합니다!’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놀랐다. 국내 상황은 어지러운데 한국의 국력은 그래도 인정 받고있는 것이다.
경복궁 광화문 앞에 월대가 복원되고 의연한 서수상이 지금에 감사하고 다시 달리자고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서로의 애국정신도 인정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어서 조국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 해법은 어쩌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