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양승복 수필가
한낮에는 따스한 햇살이 창가를 비추더니, 4시가 되자 어둠이 깔리며 싸락눈이 휘날린다. 이렇게 변덕스러울 수가 있나. 험한 길은 밀리고 위험해 마음이 경직되었다. 간신히 아들네 집에 도착하여 문을 연 순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 다시 한번 놀랐다. 코로나가 창궐했나? 하고 의아해하니 독감이란다. 독감이 유행하여 학교에 하루에 몇 명 씩 결석을 하고, 몇 달 후엔 코로나도 다시 창궐한다는 말이 떠돌고 있단다. 뭐가 아쉬워 아직 떠나지 않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지. 틈을 노리고 화살을 들고 우리들을 노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몇 년 전, 그 때도 이렇게 을씨년스러운 겨운 날이었다. 코로나19 병균은 내가 다니는 직장을 살그머니 파고들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가 입원하는 사고로 백 명이 넘는 환자들이 감염되면서, 신이 난 2월 심술 바람은 온 병원을 휘몰고 다녔다. 몰래 온 손님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나는 코호트 격리가 되어 출근한 상태로 그들과 함께 생활을 시작했다.
3일마다 하는 검사에서 20명이 넘는 감염 환자들이 나오고, 그 환자들을 하얀 방호복으로 싸매고 또 싸매고 간호하는 일은 힘겨웠다. 감염이되면 치료 병원이 정해지고, 환자들이 타 병원으로 떠나면서 다시 3일이 되고, 검사하고 밤이면 감염 환자가 손전화에 문자로 뜨고, 간간이 간호인도 섞이면서 병원은 공포 분위기로 변해갔다.
서로 믿지 못하고 잠자리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함께 식사하는 것도 무서워 집에서 보내오는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병원 관계자들은 감염자와 직접 접촉하는 간호사를 멀리서 보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다. 2월 할매는 딸이나 며느리를 데리고 함께 다니는데 딸을 데리고 올 때는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가 온다고 한다.
딸을 데리고 올 때 바람이 부는 것은 딸의 분홍 치마가 바람에 보기 좋게 나부끼도록 하기 위함이고,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 비가 오는 것은 며느리의 치마가 비에 젖어 볼품없게 하기 위함이라는데, 할매는 며느리 손을 잡지 않았다. 딸 손을 잡고 연분홍 치마가 바람에 살랑거리도록 바람을 몰고 다녔다. 그 바람은 간드러지기도 하고, 살을 에듯 매섭고, 벼락 바람처럼 휘몰아치기도 했다. 한 달여 합숙 생활은 심술 바람이 매일 휘몰고 다니며 심사를 어지럽혔다. 억측이 난무하고, 서로 믿지 못하고, 작은 일에 소란이 일고, 사악해진 바람은 할매 딸의 치마를 홀랑 들춰내 속곳까지 훤히 보이게 했다.
바람이 잔뜩 들어간 풍선은 작은 자극에 터지고, 말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민들레 씨처럼 싹을 틔웠다. 처음에는 사명감 같은 의협심이 존재했다. 이런 시대에 의료 인력으로 봉사할 수 있다는 자부심에 방호복을 입고 벗는 것도 무기처럼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은 길어지고 밀폐된 공간에 있는 공기를 헐떡거리고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품어내며 우리는 질식해가고 있었다. 200여 명의 환자 중에 용케도 20여 명이 감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떠나지 않을 것 같은 2월 심술 바람은 부드러운 꽃바람에 밀려 떠났다. 시간이 그렇게 했다. 크고 작은 바람은 늘 분다. 지금 독감으로 나라를 들끓게 하지만 꽃바람은 불어올 것이다. 아들네는 다행이 독감과 타협하는데 성공했다 하며, 현명하게 대처하여 몸도 많이 상하지 않았다고 하니 다행이다. 바람이 잠잠해지도록 나를 다독이며 살아지는 힘을 길러야 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