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나이 들어가며 여기저기 몸에 고장이 나서 병원을 자주 찾듯이 나의 발이 되어주었던 차도 요즘 고장이 잦다. 내가 골골거리니까 차도 덩달아서 골골거린다. 별걸 다 따라서 한다. 연식이 오래되니까 나도 내차도 고치고 수리하면서 같이 늙어간다. 차 전문 병원에 차를 입원시키고 치료를 받는 며칠 동안 어딘가 허전하고 불편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쓸쓸하고 불편한 일이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잘 익어간다는 것은 유행가 가사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이다.
핸드폰을 더듬더듬 찾아서 깔아둔 플랫홈 앱을 통해 택시를 호출했다. 아파트 현관 입구에 호출 택시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확인하고 서둘러 내려갔더니 단정한 젊은 기사가 친절하게 인사를 한다. 쾌적한 택시의 실내도 썩 마음에 들었고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곡이 뜻밖에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매일 운전석에만 앉아서 바쁘게 살다가 편안한 뒷자리에 앉으니 호사스러운 안락함이 느껴졌다. 나는 택시 안에서 듣게 되는 의외의 클래식 음악에 순간 택시기사에게 관심이 가서 빽미러로 슬쩍 기사님을 훔쳐보고 있었다. 순간 눈이 마주치면서 젊은 택시기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택시를 직접 호출하셨어요?” 네! 라고 대답을 하니까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는 눈치였다. “이런 택시도 이용하실 줄 알고 대단하세요”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택시기사가 보기에 분명 나의 행색은 영락없는 할머니인데 앱을 이용해서 택시를 호출했다는 것에 놀라는듯했다. 나는 순간 우쭐해지면서 “제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요?”라면서 함께 웃었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보다 할 줄 아는 것이 조금 더 많다는 것은 편리하고 좋은 일이지만 때로는 금전적인 손실을 감수해야했다. 어느 날 친구들 몇몇이 밤늦은 시간까지 우리 집에서 정담을 나누며 맥주를 몇 잔씩 나눠 마셨다. 음주운전을 할 수 없으니까 택시를 타고 돌아가야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빈 택시를 잡을 수도 없었고 혹여 빈 택시가 지나가도 호출을 받고 달려가는 차들이었다. 기다리다 못해 내 핸드폰의 앱으로 택시를 여러 대 호출해서 친구들을 돌려보냈다. 아무도 그렇게 택시를 호출할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호출 시에 택시요금이 선결제가 되므로 여러명 친구들의 택시요금은 나의 결제계좌에서 우수수 빠져나갔다. 적지 않은 몫돈이 나갔지만 친구들이 택시요금을 보낸다 해도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는 것이 탈이다.
평소에 좋은 사람들과 맛집에서 식사하는 것을 즐기는 나는 자주 만나는 지인들이 주로 나보다 연배가 높으신 선생님들이다. 언젠가부터 음식점 입구에 떡하니 서 있는 키오스크가 어른들에게는 괴물처럼 불편한 일이 되었다. 직원이 친절하게 다가와서 자리를 안내해주고 주문을 받으며 음식값을 계산할 때에 주인으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던 시절은 사라졌다. 지인들과 음식점에 갈 때도 내가 주문을 하고 결제를 하는 친절한 여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제 노인들은 돈을 갖고도 맛있는 음식은커녕 우동 한 그릇 사서 먹기도 불편한 세상이 되었다는 주제가 식사 자리의 담소가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어른들 지갑에서 꺼내주시는 쌈짓돈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문명의 이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할 줄 모르면 문맹이 따로 없다고들 하셨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편하게 누릴 줄 모르면 그림의 떡이라고 했다. 젊어서 외국 유학까지 다녀오신 어떤 어른도 키오스크를 할 줄 모른다고 번번이 밥값을 모르쇠 하셨다. 계산을 하지 않으려고 구두끈을 오래 천천히 매는 구두쇠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하면서 농담 삼아 흉을 봤다. 옛날다방 문화에 익숙하신 어른들과 커피를 마시러 가도 나의 선행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 밥도 잘 사주고 커피도 잘사는 친절한 여자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