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양승복 수필가

지인이 건넨 자루에는 자잘한 무우가 들어 있었다. 가을에 구덩이에 묻은 무우를 꺼냈다며 인심 쓰는 표정으로 차에 실어 주니 내키지 않았지만 받아 왔다. 싱크대에 쏟아 놓고 보니 어쩜 이렇게 모질게 생겼을까. 잘기도 잘거니와 죽은 깨가 다글다글하게 피어난 모습으로, 옆으로 거칠게 그어진 검은 주름들이 살기위해 몸부림친 모습이다. 이런 무우를 땅을 파고 정성들여 저장한 농부의 애틋한 손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무우를 사랑하지 않으면 농부가 무우에 들인 공에 반하는 일이 될 것 같아 수도를 틀어 닦기 시작했다.

사람과 비교한다면 키도 작고 모양새도 볼품없으며 정신적으로도 모자란 못난이다. 퍼뜩 떠오르는 사람. 유달리 와해된 사고로 주의력이 결핍되고 행동이 산만하여 손이 많이 가는 사람. 한 번도 그를 사물에 비교 해 보지 않았지만 못난이 무우를 앞에 두고 보니 퍼특 그가 떠올랐다.

그의 단순한 의식이 한곳으로 쏠려 끝이 보이지 않는 이상 행동을 필사적으로 행하고자 하는 모습이 그렇다. 강아지도 주인의 손길을 느끼고 들 고양이들에게도 찾아다니며 밥을 주고 교감을 나누는 세상인데 그의 의식은 손길을 받아들일 의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이어지는 행동은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어 그가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눈병에 부스럼에 또는 급하게 행동하다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로 상처투성이가 된다.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오염된 휴지를 주머니에 빵빵하게 넣고 나오고. 밥을 허겁지겁 먹고 목에 걸려 켁켁 거려 천천히 먹도록 하면 밥그릇 빼앗긴 강아지 마냥 으르렁거리며 불뚝거린다. 수시로 세면장에 들어가 찬물을 끼얹고 젖은 채로 옷을 입고 나와 사타구니 습진을 유발하지만 집착으로 보여주지 않아 치료가 어려운 그 사람.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 10달 동안 헤엄친 양수는 따사로운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었던가. 아니면 어머니와 이어지는 탯줄로 기질 적인 유전 인자가 흘러 들어갔나.

어린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부축하려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뛰어나간다. 넘어지고 부딪치며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성장한다. 그 사람이 생각한 일을 강박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에 발동이 걸리면 보호하려는 손을 뿌리치는 아이와 같다. 그러나 조절이 되지 않는다. 단순한 것에 집착하는 것들을 거둘 수 있는 의지가 뇌에 구조에서 빠졌다. 조물주가 나사를 덜 조였나 하는 의구심이 인다. 집착적인 행동을 하도록 쫓아다니며 배려해 주면 고맙다는 인사도 하는 사람이니. 그게 뭐라고 화장실 휴지통에 든 오염된 휴지를 손으로 집어 주머니에 넣고, 소변 통에 집착을 하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무우를 단물을 베이게 한 다음 고추 가루로 빨갛게 물 들였다. 내 의지 대로 무우는 물들고 있다. 무지랭이 무우 선물은 찌르는 통증으로 나의 의식을 깨운다. 마음을 담지 않은 헤이한 모습을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고 단정하고 보는 사무적인 마음을 붙들어 돌려 세운다. 정신이 지리멸렬하니 세포도 정상적인 분열을 하지 못하여 모습도 보기 민망하니, 이 생에 신의 혜택을 더 받은 나의 숙제로 그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만남이다. 손질과 정성들인 양념의 배합은 나막 김치가 되어 농부의 바람대로 식탁 위에 올랐다. 우리들도 무우와 같이 스스로 물들여가며 그들과 눈을 맞추려 서로 격려하고 순간 순간 자신들을 깨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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