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바깥마당에 차를 세웠다. 운전하느라 고생한 남편을 뒤로하고 어머니가 계실 때처럼 집으로 달려들어 간다. 먼저 도착한 장조카는 환기를 시키고 어느새 청소를 마쳤다. 조카와 함께 왔다는 둘째 언니를 찾자 묵정밭에서 냉이를 캔단다. 지난해 농사를 갈무리하지 못해 농작물과 잡풀이 앙상하게 뒤엉켰다. 그 끝자락에 생전의 어머니처럼 쪼그려 앉아 냉이를 캐는 언니, 콧날이 시큰하다. 반가움에 꼭 끌어안았는데 익숙한 체취다. 어머니 냄새다. 바구니에는 이파리가 시원치 않은 갈색 냉이가 시들하게 담겨있다.
뒤이어 셋째 언니네와 남동생네가 도착했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제사 준비하여 선영으로 올랐다. 지난해 옥배미 가는 길에 계시던 아버지를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이곳으로 모시게 되었다. 온 마을이 훤하게 내려다보여 적적할 새 없을 것이다. 제수는 그저 어머니 좋아하시던 과일을 챙기고 아버지의 약주도 잊지 않았다.
생전의 뜻에 따라 추도예배로 진행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어머니와의 추억이나 감사 인사를 할 차례가 되었다. 그동안 건강하지 못했던 언니는 당신이 회복되어가는 것이 모두 어머니의 보살핌이라 하였고 다른 형제들도 열심히 살아가고 앞으로도 잘 지켜보아 달라고 했다. 나는 목이 메어 겨우 한마디를 했다. “어느새 일 년이 되었네요.” 그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의 건강 문제와 형제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뒤엉겨 눈물이 되었다. 추도예배로 제사를 지내지만 절을 올리고 술도 부어드리고 웃 대에도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는 두 분 앞에서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어린아이들처럼 해맑게 웃었다. 형제들은 어머니의 삶을 닮겠다고 앞다투어 말했다.
식당 예약 시간에 쫓기어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내려오는 길은 아직 진달래는 눈도 트지 않았고 햇볕 닿는 곳에 겨우 냉이하고 달래의 잎사귀가 적막함을 깨우고 있었다. 어머니 계실 제 자주 드나들던 식당은 넓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리 칼칼한 홍어와 갈치찌개를 부탁해 놓았고 반찬들은 어머니가 해주시던 밥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울컥하고 올라오는 그리움을 한 숟가락씩 떠넘겼다.
첫 제사를 지냈으니 작은아버지 댁에 들렀다. 남동생에게 족보를 주시겠다는 말씀도 있었고 건강이 여의치 않으셔서 침상에만 계시니 얼굴이라도 보여드려야지 싶었다. 형제분들이 모두 작고하셨고 한 분만이 자리보전하신다. 아버지와 진배없으시다. 정정하던 모습은 간데없이 야위고 총기는 흐려지셨다. 가까이 사시는 막내 작은어머니도 우리가 온다는 소식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셨다. 작은어머니들은 건넌방에 자매처럼 누워계시다가 반갑게 맞아 주셨다.
허리는 구부정하고 움직임이 예전만 못하다. 부모님을 섬기며 남편을 받들고 온몸이 부서지도록 자식들을 키워내시느라 진이 빠진 모습이다. 아침나절 텃밭에서 캔 냉이처럼 시들하다. 빛바랜 무명옷 같기도 하고 뿌리가 휘어지고 윤기 잃은 것이 꼭 작은어머니들과 닮아 이제는 내가 살포시 안아드린다.
냉이 냄새가 올라온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오물조물 거리다 들기름을 두른 달큰함이, 된장을 두어 숟가락 흔들어 보글보글 끓인 찌개 냄새다. 누가 뭐라 해도 들녘의 겨울 냉이처럼 강인하게 사셨던 우리 내 어머니들이 아니겠는가. 익은 얼굴에 하얀 꽃이 수줍게 피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