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인생의 어느 한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왜 실패했는가?’ 지금 내 눈 앞에 놓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성공과 실패가 분명하게 나뉘는 경쟁에서 뒤쳐졌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향해 이런 질문을 한다.

전기 자동차 회사인 테슬라를 이끌고 있는 일론 머스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수십 년간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지켜온 세계 최고 부자의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 인물이다.

하나의 회사를 창업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는 테슬라를 포함하여 6개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제는 미국 정부를 위해서도 손을 보태고 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질문을 받게 된다. 일론 머스크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한다. ‘잘못된 질문으로는 옳은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성경에도 나온다. 한 번은 예수님을 싫어하는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던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는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 8:5)라고 묻는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어떤 답을 하실지 궁금해서 물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질문은 이미 특정한 답을 강요하고 있다. 이 질문에 맞는 답을 하기 위해서는 돌을 던질 것인지 던지지 않을 것인지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다. 돌을 던지라고 한다면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일이 되겠지만 늘 죄인을 사랑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신 예수님이 한 여인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빼앗는 일이 될 것이다. 돌을 던지지 말라고 한다면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이가 오히려 하나님이 과거 모세에게 주셨다고 알려진 율법을 어기는 일이 되는 것이다.

결국 돌을 던져도 문제가 될 것이고 던지지 않아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떤 대답을 하실지 주목했을 것이 틀림이 없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돌을 던지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던지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여인의 운명을 예수님의 손에 맞겨 그 책임을 물으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다시금 그 책임을 사람들의 손에 돌려주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하나 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그 자리를 다 떠났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이 이미 잘못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처럼 처음부터 질문이 잘못되었다면 아무리 머리를 써서 더 나은 답을 찾으려고 해 보았자 헛수고인 것이다. 잘못된 질문은 마치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이후에는 반드시 모든 단추들이 다 엉망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우리는 문제를 만날 때 ‘나는 왜 실패했을까?’라고 질문한다. 그런데 그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모든 실패의 원인이 오직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어떤 일들은 우리의 최선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가뭄이나 홍수 때문에 고난을 겪는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나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그것을 악용하여 더 나쁜 결과가 나왔다면 이제 나는 선의를 포기해야 하는가?

실패의 원인은 다양하다. ‘나는’ 왜 실패했는가? 라는 질문은 이미 처음부터 그 실패의 책임이 오로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또한, 이 질문이 잘못된 두 번째 이유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이나 문제가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이 바라는 결과와 크게 어긋난 상황이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런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이 있다. ‘우연히 얻은 좋은 경험이나 성과’를 일컫는 말이다. 수많은 생명을 살린 페니실린과 같은 발명품들은 사실 우연히 얻은 결과물이었다. 처음에는 실패작으로 여겼지만 그 이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사용됨으로써 인류 역사에 남을 발명품이 된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가 겪는 상황은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상황들을 다 ‘실패’로 단정 지을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첫 단추부터 다시 채울 준비를 해야 한다. 문제와 고난의 상황을 만났다고 할지라도 ‘나는 왜 실패했을까?’와 같은 잘못된 질문으로는 옳은 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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