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새해 들어서도 우울하다. 여전히 을씨년스럽다. 바람이 분다. 바싹 마른 바람이 갈 곳 몰라 허공을 헤매다 기어이 경상북도 산등성이에 불을 질렀다. 썩은 것이나 태울 일이지. 애꿎은 산야가 불길에 휩싸인다. 온 나라가 난리다. 계절이 제멋대로라고 탓하던 말이 쏙 들어간다. 제멋대로인 건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먼지 묻은 햇빛 아래에서도 푸릇푸릇 새싹들이 올라오고 있다. 3월의 끝자락에 미선나무가 다글다글 꽃을 매달고 있다. ‘모든 슬픔은 사라진다’ 꽃말이 은은한 향기를 끌어올려 위로한다. 천연기념물 미선나무는 세계 속의 1종 1속이다.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기, 미선나무처럼 일가친척이 조르르 꽃을 피워 봄을 불러온 가족이 있다.

상강 신건식 선생 가문이다. 상강은 1889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리에서 신용우와 전주최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나 1963년 세상을 떠났다. 독립운동 활동 당시에는 신환(申桓)이라는 이름을 병용하였다. 본관은 고령이지만, 청주의 고령신씨는 집성촌이 상당산성의 동쪽에 있다하여 산동신씨라고도 불린다.

산동신씨 家는 개화의 길을 걸으며 많은 인재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규식, 신채호, 신백우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은 1901년 문동학원을 비롯해 덕남사숙과 산동학당을 설립하여 문중 개화의 문을 열었다.

신건식은 의금부 도사, 중추원 의관을 지낸 부친 덕분에 어린 시절 상경하여 무관학교 유년반을 거쳐, 관립한성외국어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11년, 형 규식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하여 항저우에 있는 저장성 성립(省立)의약전문학교를 다녔다. 이후 중국군 의무 장교로 복무하며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등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인 동제사에 참여하였다. 동제사는 한마음으로 같은 배를 타고 피안에 도달하자는 뜻이다. ‘동주공제 同丹共濟’ 라고도 했다. 국권회복을 목표로 한 상하이 지역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한 단체다.

상강은 1925년, 저장성 육군형무소 군의관을 시작으로 1928년에는 중국 정규군 장교인 중교로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외과주임이 된다. 당시 독립운동가와 청년 학생 등 한인 동포들의 숙식 경비를 지원하며 활발히 활동하다 1933년 중국군 직책을 사임하고 1937년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한다. 1939년 개원한 의정원 회의에서 충청도의원으로 당선된 것을 계기로 1943년 임시정부 재무부 차장에 선임되며 재정의 중추적 역할을 맡는다.

그가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형 신규식의 영향도 컸지만, 부인 오건해와 딸 신순호, 형네 가족, 사돈 박찬익을 비롯해 사위 박영준 등 일가가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한 것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으리라. 한 가문의 구국 일념이 우리나라 독립에 미친 영향과 오늘을 생각해 본다.

쟁쟁한 가문에 편히 잘 살 수 있는 환경임에도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발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아니었을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큰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윤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피켓들 들고 목청을 높이는 저들은 누구를 위해 저리 거리로 뛰쳐나온 것인가. TV를 끄고 밖으로 나왔다.

마당 가에 옹기종기 서 있는 미선나무꽃이 나긋이 향기로 말을 걸어온다. “봄이야!” 이안 시인의 동시 ‘4월 꽃말 2’ 가 가만히 생각을 우려보라 말한다. 미선나무를 심을 땐, // 가지 하나를 잘라 / 갖고 있자 // 모든 슬픔이 사라지면 / 안 되니까 // 슬픔 하나는, / 잘 말려서 갖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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