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속수무책이다. 봄꽃이 곱게 피어난 원피스 자락을 한 손으로 쥐고 다른 손으로 모자를 잡았다. 바닷길로 들어서서 몇 발자국을 옮기자 간월암이란다. 물때가 맞지 않아 세 번째 방문만에 입성이다. 계단을 사뿐히 오르자 용왕각 앞 난간에 작은 연등이 줄을 지어 사람들의 소망을 품고 있다. 섬을 의지해 새의 둥지처럼 자리를 튼 암자의 일주문을 지나자 거친 바람에 휩쓸려 갈매기처럼 펄럭인다. 범종이 사람을 절의 경내로 이끌어 두 손을 모으게 한다.
산신각,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미니어처의 세상이 아닌가. 단체 관광객들 사이에서 그들처럼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원했던 바는 아니지만 좁은 공간에서 얻은 득이다. 섬에 들어설 때부터 유독 사철나무들이 시선을 끌었다. 살고 있는 지역보다 기온이 낮아선지 아직 봄꽃이 피지 않은 이곳은 푸르름으로 마음을 편하게 한다. 그리고 이 백 오십 년째 살아 내고 있는 사철나무를 만나게 되었다. 나무의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온몸으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오래 산다는 것은 마냥 좋은 일이기만 했을까. 그것도 평생을 푸르른 운명을 가진 그의 고독은 어떠했을까. 산다는 것은 빛과 어둠으로 희망과 절망이, 기쁨과 슬픔이 줄다리기하는 것 일진데 그저 빛으로 희망으로 기쁨으로 사는 동안 행복하기만 했을까. 내 생애도 고단했던 순간을 지나 결실을 맺을 때의 기쁨이 컸고 감사히 즐길 줄 알았으며 다시 찾아올 어둠의 날을 위해 스스로를 다지게 되었다. 늘 푸르기만 한 사철나무의 상처 난 몸을 보며 어떤 연민 같은 것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작은 섬에 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겨우 몇 사람 낚시하기에 좋을 만큼의 공간 일진데 터를 잡고 부처님을 모신 것은 인간의 욕심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저 한 것은 아닐까. 그동안 다녀온 사찰은 대부분 넓은 면적을 자랑했다. 일주문에서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천왕문을 만나게 된다. 건물들은 어찌나 많고 웅장한지 왕궁에 들어선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부처님은 얼마나 큰지 올려다볼 때 목이 아플 지경인 곳도 있었다. 물론 수행하는 스님들의 소박한 생활이 엿보이는 산사도 둘러본 적이 적지 않다. 어찌 되었든 이곳 간월암에서 진짜 부처님을 영접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지갑에서 빳빳한 지폐를 꺼내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는 불전함에 넣으며 세상이 이치대로 굴러가길 그리고 모든 이들의 평안을 빌었다.
간월도의 사철나무는 푸르르고 바람은 거칠었다. 삶의 진정한 의미가 간월암의 마당을 거니는 이들의 가슴에 새겨지고 있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들떠 봄으로 단장한 내 모습이 멋쩍어 얼굴이 붉어진다. 그저 높이 오르려 했고 남보다 더 갖고자 애쓴 삶이 아니라고 하기엔 객쩍은 일이다. 평범했기에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살아 냈다. 사회적으로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등불이라 여겼었다. 발자국이 지워져도 불빛을 보며 따라 걸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나도 그곳에 다달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간월암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작고 소박한 중생의 삶, 겉모습보다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가 도란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월암을 나오며 바람에 날릴세라 꽃이 피어난 치맛자락과 모자를 양손으로 거머쥔다. 욕심을 두고 오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