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희한 시인·수필가
‘본의 아니게 쓸모없는 사람들이란 바로 새장에 갇힌 새와 비슷하다. 그들은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정말이지 끔찍한 새장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해방은 뒤늦게야 오는 법이다. 그동안 당연하게든 부당하게든 손상된 명성, 가난, 불우한 환경, 역경 등이 그를 죄수로 만든다. 그를 막고, 감금하고, 매장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지적할 수 없다. 그러나 표현하기 어려운 이 창살, 울타리, 벽 등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환상이고 상상에 불과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묻곤 한다.’
“신이여,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요?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영원히?”
우리에게 친근한 화가. 집이나 직장이나 병원에서 자주 보는 ‘해바라기’ ‘자화상’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을 그린 고흐가 3살 아래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바람에 휘둘리는 단풍나무 마른 가지를 본다. 찬바람에 떨고 있는 것이 나뿐이랴. 가족이나 주변인과의 갈등, 직장의 일, 미래가 불투명해서, 투자 문제, 혹은 신체가 불편해서 등 수많은 이유가 있다. 울타리나 벽, 또는 창살 같은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니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까?’ 누구에게든 물어보고 싶어 주변을 둘러보고 목을 빼고 기다려도 보고 손을 모으고 기도도 했을 것이다.
고흐도 그랬다. 아버지와 극심한 갈등을 빚던 고흐는 동생 테오의 격려와 도움으로 그림을 시작한다. 변변한 직장도 없고 돈도 없고 결혼도 못 한 그는 그림에 대한 감성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와,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것과 자연에 대한 느낌까지 동생과 나눈다.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하니 늘 그립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 주는 동생이 고맙다. 그래서 안부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나누었다. 고흐가 태오에게 쓴 편지만 668통이다. 죽음도 동생의 품에서 맞았다. 1890년 7월 29일 새벽이다.
‘새장에 갇힌 새는 봄이 오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안다. 단지 실행할 수 없을 뿐이다.’
누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일, 더구나 그것이 봄이 오면 새가 짝을 찾고 알을 낳아 기르는 일처럼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일은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알아 왔다. 지금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그런데 밥을 굶는 시대가 아닌데도 꺼린다. 사랑을 꺼리고 결혼을 꺼리고 자식 낳는 일을 꺼린다. 사람 때문에 망가지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우주가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억지로 상상하며 위로해야 하는가. 인구가 감소하니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심각하고, 직장에 사람이 부족하여 공장이 멈춘다. 그런데 더 심각한 일이 요즘 자주 있다.
우리나라 치안이 비상이다. 어려운 상황을 견디기가 어려워 정신에 이상이 생겼는지 이유 없이 남을 해치는 이가 늘어난다. 혼자는 억울하니 너도 당해야 한다는 심사가 드나 보다. 고흐도 어려웠다. 하루하루 먹을 빵을 걱정하고 물감 사는 것을 걱정하던 고흐다. 그런데 동생에게 ‘사랑’으로 그런 감옥을 없앨 수 있다고 썼다.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감옥’이란 편견, 오해, 치명적인 무지, 의심, 거짓, 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1880년 7월.
이렇게 편지로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는가. “너는 아주 진지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니 지금 생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너는 뭐든지 해 낼 거야. 할 수 있어, 분명 성공할 거야, 그리고 남들이 하는 성공이라는 잣대로 너를 재지 말아. 너는 네 그대로 멋져” 등의 말을 해줄 부모나 형제나 벗이 있는가? 어떤 만족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정말 잘했다. 수고했다. 자랑스럽다.”고 등을 두드려 줄 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마음먹은 이들의 상황에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새삼 고흐와 테오 형제의 아름다운 형제애가 생각난 날이다. 꽃샘바람이 아무리 차도 아파트 높은 건물이 북풍을 막아주는 양지쪽엔 매화 봉오리가 초록 물을 한껏 올리고 있다. 무생물도 무언의 도움을 주는 길에서 매화꽃 향기를 미리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