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우리 교회는 춘분 당일 혹은 그 직후 만월 이후 첫 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하고 있다. 2025년 올해는 지난 4월 20일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이었다.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교리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삶이 육신의 죽음으로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 등 이 모든 교리들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다.
부활은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인간에게 죽음은 말 그대로 절대 절망을 상징한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를 통해 죽음의 절망이 극복되었다고 선언한다. 예수의 부활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래서 최근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적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임을 증명하는 일에 주목해 온 것이 사실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어야 교회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실제로 부활했는지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예수의 부활 사건 그 자체를 통해 자신들 역시 그러한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는 소망에 집중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2000년 전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갈릴리 지역에서 유대인 남성이 십자가형을 받은 후에 무덤에 묻혔고, 죽은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러한 사건이 우리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이 진짜라는 결론에 이른다 하더라도 그 부활 사건을 자기 자신의 삶과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난 믿기 어려운 기적 사건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는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교회들의 중심인 이유는 그 사건이 단순히 죽었던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그 이유와 목적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을 그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닌 자기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간직한 사람은 죽음과 같은 고통과 문제가 찾아오는 순간에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자신도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의 소망을 품는 것이다.
결국 초대교회 공동체는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로마의 오랜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견딜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교회의 신앙으로 로마를 정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최근 수년간 코로나를 비롯하여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위기, 급격한 기후의 변화 등 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큰 문제들을 겪어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잘살 수 있다는 소망을 얻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당장은 아무 보이는 것이나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고 해도 자신이 바라보는 미래의 그림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놓인 문제를 견딜 수 있는 위로와 능력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고난이 깊을수록 더 분명하고 확실한 소망에 대한 증거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고난이 깊을수록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소망에 대한 증거는 더더욱 희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인간은 죽음과 같이 느껴지는 절대적인 절망 속에서도 아주 작은 생각의 변화를 통해서 다시 일어설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이길만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문제를 극복하고 인류의 역사를 바꾼 수많은 기적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말씀한다.
우리 미래는 눈에 보이는 환경이 아니라 우리 마음과 우리 생각에 달려있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우리 내면의 마음에 더욱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그 안에 이미 생명이 있고 문제의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여 우리 마음의 힘은 죽음 조차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