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옛날 한 가난한 청년이 너무 배가 고파 빨래하는 아낙네가 있는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낙이 젊은이가 안쓰러워 밥을 먹으라고 주었다. 그는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웠다. 그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자 소문이 마을에 퍼졌다.
어느 날 젊은이가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마을 남정네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중에 혈기왕성한 한 남정네가 이렇게 외쳤다. “사지가 멀쩡한 젊은 사내가 여인네가 주는 밥을 얻어먹고 다닌다는데, 네가 그놈이냐? 네가 모욕을 느꼈다면 이 칼로 나를 찔러보아라. 만약 그럴 용기가 없다면 내 가랑이 아래를 기어나가라.” 그 말을 듣고 이 젊은이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면 자신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을 깨닫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그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갔다. 그리고 남정네들의 비웃는 소리를 뒤로하고 마을을 떠났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는 절치부심하여서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 그는 옛날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아낙을 찾아 천 냥의 상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비웃던 남정네를 찾았다. 그는 큰 벌을 받으리라 생각하고 벌벌 떨면서 왔지만, 그에게 관직을 내려주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그 남정네가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신이 권력을 잡은 후에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사람에게 보복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 그 왕의 지혜를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다. 그 남정네를 죽여서 보복을 하는 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니다. 자신의 밑에서 자신을 돕도록 하는 것이 자신은 그 남정네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더욱 중요한 깨달음은 모욕은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이다.
5월 5일은 부처님오신날이었다.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계실 때 한 브라만이 부처님을 찾아와 욕을 하였다. 그 욕을 듣고 부처는 브라만에게 집에 친구가 찾아오면 음식을 대접하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친구가 음식을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은 누구 것이냐고 물었다. 자기 것이라고 하자, 부처는 그에게 당신이 준 욕을 내가 받지 않았으니 그 욕은 당신 것이라고 했다. 누가 나를 모욕하여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행위로부터 우리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분노의 버튼이 눌러져서 화가 폭발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상대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열심히 키우고 애지중지 지키려고 하는 이 자존심이 원인임을 알아야 한다. 자존심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무리 보호해도 자존심이 커지면서 상처받을 일도 많아지게 된다. 그러니 결국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상황은 피할 수가 없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학벌을 통해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어 자존심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학벌을 얻었는데,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공부는 내가 나를 알아가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의 목적이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보다 나은 조건의 학벌과 취업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공부를 통해 어리석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를 통해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행동의 어리석음을 벗고, 지혜를 얻는 배움의 가치를 깨닫는 여정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