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상현 청주시 청원구 세무과 주무관
전세사기 피해는 더 이상 뉴스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한때 ‘깡통전세’라는 신조어로 불리던 이 현상은 이제 수만 세대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고통이다. 2025년 3월까지 정부에 의해 피해자로 결정된 인원은 총 2만8666명에 달하며, 2025년 1월부터 3월까지도 각각 898명, 1182명, 873명이 새롭게 피해자로 확인됐다. 월평균 약 1200건의 신규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는 주로 사회초년생인 20~30대 청년층이다. 30대가 1만3350명, 20대는 7082명으로 전체 피해자의 약 75%를 차지한다. 피해 유형은 ‘깡통전세’ 등 임대인과 중개인의 공모 사기, 보증금 미반환, 등기부등본만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 비대칭 구조를 악용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2023년 4월 3일 개정된 ‘임대인 미납지방세 열람제도’는 의미 있는 전환점을 만들어줬다. 이 제도를 통해 보증금이 1000만원을 초과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은 임대인의 동의 없이도 세금 체납 여부를 열람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등기부등본이나 확정일자 외에는 임대인의 채무 현황을 알 수 없었고, 특히 지방세 체납 사실은 임차인에게 ‘숨겨진 리스크’였다.
이 제도는 전국 어느 시·군·구청 세무부서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필요한 서류는 임대차계약서 사본, 신분증, 열람신청서다. 임차인 본인뿐 아니라, 주민등록상 동일 세대의 가족도 신청할 수 있다. 열람은 계약 체결일 이후부터 임대차 개시일 전까지 가능하며 복사나 사진 촬영은 금지되고, 열람 사실은 임대인에게 통보된다.
이 제도는 단순히 정보 열람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 임차인이 위험을 감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노출되던 정보 격차를 좁히는 역할을 한다.
정부는 사후 구제 조치도 강화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한 피해주택 매입사업은 현재까지 44호가 완료됐으며, 이중 다수는 후순위 피해자였다. 과거에는 경매를 통한 배당으로 보증금의 30~40%밖에 돌려받지 못하던 이들이, 개정된 특별법 덕분에 평균 73% 이상의 회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가 있다. 임대인 지방세 열람제도의 인지도는 낮고, 실무에서는 아직 제도의 활용도가 제한적이다. 임대차계약 전 중개업소에서 열람을 권장하거나, 임차인 스스로 적극 활용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제도의 효과는 반쪽에 그칠 수 있다.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인 홍보와 부동산 실무자 대상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세입자가 계약 전 임대인의 체납 정보를 더 폭넓게 확인할 수 있도록 지방세뿐 아니라 국세 등의 체납 정보 접근성 강화도 필요하다. 이미 일부 국세 체납 내역은 홈택스를 통해 확인 가능한 만큼, 제도적 안내와 홍보를 통해 실질적 활용도를 높이는 노력이 중요하다.
해외에서 시행 중인 제도도 참고할 만하다. 예컨대 영국과 호주 등 일부 국가는 보증금을 임대인에게 직접 지급하지 않고, 제3자인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에스크로)에 예치하는 방식을 운용하고 있다. 또한, 호주·뉴질랜드는 임대차 분쟁 발생 시 공공기관 산하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신속하게 중재·조정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임차인의 권리를 보다 실질적으로 보호한다. 이러한 제도는 국내에서도 도입을 검토해볼 만한 방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