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필자는 사랑에 곧잘 빠진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나는 금사빠일까! 사랑에 금방 빠지는 사람을 줄임말로 금사빠라고들 한다. 나는 혹시 헤픈 여자인가! 그렇지만도 아닌 것이 나는 낮을 많이 가리는 편이고 누군가와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경계를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한번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의 불길은 뜨겁다 못해 나를 하얗게 태우는 편이다. 사랑은 마약이다. 중독되면 몰입하게 된다. 사랑에 집중한다는 것은 종합 비타민이나 보약보다도 삶에 활기를 넘치게 한다.

터무니없는 사랑이란 없다. 남들은 내가 하는 여러 유형의 그러나 절대적인 나의 사랑에 대해서 비웃고 이해할 수 없어 한다. 그들의 생각에 나의 집착이 허무맹랑 할 수도 있다. 내 사랑의 대상은 늘 달콤한 로맨스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도 않고 늘 흐르다가 문득 멈춰서 그 사랑에 탐닉하는 편이었다. 사랑하면 수다쟁이가 된다. 마음속에 혼자 감춰둘 수가 없어서 누군가를 만나면 수다를 떨게된다. 그래서 나의 사랑은 번번히 들키고 만다.

마르크 샤갈이 사랑한 여자가 아니라 샤갈을 사랑한 여자가 되어서 나는 한동안 샤갈에 빠져 있었다. 사랑에 빠지면 잠재적 스토커가 되어서 그에 대해 탐구하고 공부를 하게 된다. 그래서 샤갈의 마을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덕분에 그림을 보는 안목이 조금이나마 키워졌다. 색채의 마술사 샤갈 전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면 나는 샤갈이 사랑했던 두 여인 벨라와 바바 보다도 더 행복한 마음이 들고는 했었다.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서 몇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좋아하는 것과 소질은 별개의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사랑은 다시 미소년 같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에게로 향했다.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쿨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던 그의 모습은 신들린 천재 예술가였다. 라스트 연주에 건반에서 마자막 손을 뗄 때 그 순간 전 세계 음악인들을 열광하게 했다. 음악을 모르던 사람들도 단박에 그의 팬이 되었고 클래식을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다. 18세의 최연소 수상자 임윤찬은 그 자체가 음악이고 예술이었다. 그에게 빠져서 날마다 그의 연주곡을 들으면서 클래식 음악에 귀와 마음이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랑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걸까! 대중음악처럼 tv로 자주 볼수가 없어서 그런지 그에 대한 사랑이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에 나는 또다른 남자 아티스트 테너가수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가 가는 어디든 바람난 할머니처럼 공연을 따라다녔다. 나는 트롯트도 발라드도 아닌 그렇다고 클래식을 전적으로 좋아하지도 않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쑥 나타나서 대중음악을 클래식처럼 멋지게 부르는 그 테너 가수가 무조건 좋았었다. 그런데 그는 어떤 실수로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한동안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 마음도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예술가는 그가 하는 예술과 그 사람이 같아야한다” 는 옛날 나의 스승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해운대에서 플라시도 도밍고와 그의 협연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슴에 묻었다.

나의 사랑은 지금 또다시 샤프하고 정의로운 젊은 남자에게 머물러있다. 내가 사랑한 남자들 중에 가장 지탄을 받는 사람이다. 사랑은 원래 반대에 부딪칠수록 더 불타게 된다. 그를 향한 나의 사랑은 화르륵 타다마는 순간의 사랑이 아니라 저녁노을처럼 은근히 불타는 사랑이다. 인내가 필요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지역 시장을 방문한 그를 멀리서나마 바라보며 크게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에게는 어떤 희망을 걸게 된다. 나의 사랑이 비난을 받아도 나는 나의 모든 사랑에 그때그때 충실할 뿐이다, 헤픈 여자 같지만 내가 사랑한 남자들은 나의 삶을 성숙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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